어동육서니 좌포우혜니 홍동백서니 하는 말은 다들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언제? 제사나 차례를 위한 상차림을 할 때. 규칙에 따라 가지런하게 진설된 음식을 보고 있자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다. 올라가는 나물과 과일 종류만 해도 최소 서너 가지 이상은 되는 것을.
사실 전통적으로는 제수음식을 이렇게 많이 장만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간소하게, 정성껏 차리면 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이럴 경우라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나’야말로 가장 전통을 잘 지켜왔다고 볼 수 있겠다.
군대에서 어떻게든 라면을 끓여 귀신을 정성껏 대접했으니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이 처음부터 제삿밥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사실은 귀신에게 반강제로 ‘삥’을 뜯겼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라면을 먹으려는 ‘나’ 앞에 등장해 애처로운 눈길로 계속 쳐다보면 누구라도 저절로 ‘머…먹을래?’ 라는 말을 하게 될 걸? 주인공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귀신에게 라면을 끓여다 바치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자주. 귀신에게 먹을 걸 주면 그게 바로 제사를 모시는 거니까.
나중에 기수열외가 된 후임이 일으킨 총기난사사고에서 귀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나’를 보면서 이게 바로 꾸준히 제사를 모시며 공덕을 쌓은(!) 결과물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라면 하나로 시작해 귀신의 유해까지 찾아준 ‘나’의 행동력과 마음 씀씀이에 감탄만 나왔다. 누가 전역도 미뤄가면서 귀신을 성불시키는 데 집중하겠냐구. 결말에 새로운 인연을 만날 기회까지 잡은 걸 보면 귀신이 그동안 받았던 제삿상과 유해를 찾아준 것에 보답한 게 아닐까?
공포에 질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성불도 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심정은 나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없이 그저 수십 년을 떠도는 와중에 나타난 따뜻한 라면 한 그릇과 제주(일단 제사를 모시는 사람이긴 하니까)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귀신에게는 단순한 제삿밥이 아니라 구원이었을 것이라 감히 짐작해본다.
중간중간 분위기가 심각해져 이야기가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은 과하지 않게 웃음 포인트를 잘 살려 이야기를 끌어나갔기에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재미가 떨어질까봐 피했으니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앞으로 라면을 끓일 때면 한동안은 라면을 좋아하던 학도병 귀신이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