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같은 눈과 분홍빛이 도는 코와 윤기가 흐르는 하얀 털과 우아하게 흔들리는 긴 꼬리.
이런 묘사를 읽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드는가? 고양이? 강아지? 백사자? 백호? 나는 쥐가 떠오른다. 실험용으로 케이지에 갇혀 사육되는 쥐. 사람들은 쥐라고 하면 징그럽다며 몸서리를 치지만, 사실 나는 별 생각이 없는 편이다. 실험용 쥐들은 외모로만 보면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하는 편에 가깝고, 바깥 하수구에서 시궁쥐를 봐도 그렇게까지 혐오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깥에서만 그들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어떤 장소보다도 편안하고 아늑해야 할 집에서 쥐를, 그것도 더러운 하수구에서 사는 시궁쥐를 봤다면? 그것도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들른 화장실에서 무방비 상태로 만났다면?
재은이 바로 이런 일을 겪었다. 잠이 덜 깬 새벽에 무방비한 상태로 마주친 쥐라니. 차라리 ‘바’선생이나 다른 벌레들을 만난 거라면, 해충퇴치제로 잡을 수라도 있다. 아니면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그런데 쥐? 과연 쥐에게 에X킬라 같은 해충퇴치제가 들을까? 물리력을 행사하려고 해도 내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나보다 덩치도 작고 속도도 빠르니 내가 놓칠 가능성이 훨씬 크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마주친 재은은 질색팔색하며 당장 부동산에 집을 내놓는다. 쥐를 잡는 트랩도 설치한 건 물론이고, 시세보다 훨씬 싸게 급매로 아파트를 내놓은 재은을 보면서 나는 좀 당황했다. 물론 집에서 쥐를 마주쳤다는 건 경악할 일인 건 맞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당장 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 할 일일까? 트랩도 설치했고, 혹시나 찝찝하다면 쥐덫과 끈끈이를 설치해서 잡으면 되지 않나? 더군다나 재테크를 하기 위해 구입한 집인데? 쥐 한마리에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안전진단이 통과되면서 집값이 뛰었다는 소식에 재은은 결국 이사를 포기한다. 난리를 치며 이사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냐는 듯.
이렇게 쥐가 나올 정도니, 암, 당연히 재건축을 해야지.
언니의 말은 옳았다. 쥐는 밤이 되면 또 날뛰겠지만, 집안으로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그냥 소리만 좀 나는 것뿐이니까.
참고 살다 보면 쥐는, 또 어디론가 이동할 것이다.
정 쥐가 나오는 집에서 살기가 싫었다면 이 아파트는 그대로 가지고 있고 다른 전셋집을 구해 이사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텐데. 나에게는 집에서 쥐를 만났다는 사실보다는-물론 이것도 아예 공포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쥐를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사가려는 재은의 행동이 더 공포스러웠다.
내가 너무 황금만을 좇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