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이 화두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고, 각자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나 문화권 혹은 종교에 따라 다양한 사후세계가 탄생하게 만들었다. 사후세계를 일컫는 다양한 명칭이 있지만 보통 줄여서 말할 때는 ‘저승’이라고 일컫는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게 되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행했던 선행과 악행을 평가받고 선인은 천국으로, 악인은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 사후세계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정서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저승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저승과는 약간 다르다. 전통적인 사후세계관이라 한다면 죽은 후 49일동안 저승시왕에게 판결을 받고 그 이후 쌓은 업에 따라 죗값을 치르고 업보에 맞는 생명체로 환생할 것이다. 그러나 때는 최첨단을 달리는 디지털 시대. 저승도 이승의 변화에 발맞추어 모든 것을 전산화한 이후로 죽은 영혼들은 49일동안 하고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짧은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갑자기 죽은 사람보고 ‘넌 죽었고 49일동안은 자유니까 맘껏 즐겨’라고 말한다면 바로 적응하는 영혼이 얼마나 될까?
은수도 처음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하며 방황하던 은수는 ‘이름없는 마을’에 도착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은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마을 사람들이지만, 그들 사이엔 묘한 알력이 흐른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며 죽은 모습 그대로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살아있을 때랑 다른 게 하나도 없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사람들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끼리끼리 모여 ‘정치’를 하게 되나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더 잘먹는다고, 삶에 찌들어 생존에만 급급하던 은수는 이 마을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마을에서 정착하기 위해 고른 집도 바깥에서 보면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나무 집이다. 이 집은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있었던 지수의 마음이 형상화 된 상징물이라고 봐도 되겠다.
그러나 윤석 아저씨, 현우, 희경 아주머니, 리테라 등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은수는 조금씩 날갯짓을 시작하려 노력한다. 본인이 가진 능력도 개발하고, 여행도 떠나고, 탐험가들과 마주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은수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궁금하다. 이승에서처럼 똑같이 살아갈 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지, 그도 아니면 미련에 갇혀 망혼이 되어버릴지.
은수 외에도 마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저승 마을의 주민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망혼이 되리라는 두려움을 무릅쓰고도 살기를 선택한 그 사람들의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이 소설은 은수 하나에만 집중된 이야기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진행되는 군상극이니만큼 기다리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하나씩 풀려나가리라 기대한다.
이승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삶을 저승에서나마 가꾸어 나갈 모든 이들에게 행운을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