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목을 봤을 때, 호귀는 창귀를 가리키는 다른 말인 줄 알았습니다. 호랑이가 귀신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해서요. 거기다 처음 먹힌 사람의 귀신은 굴각, 두 번째로 먹힌 사람의 귀신은 이올, 세 번째는 또 육혼이라고 제각각 이름도 하는 일도 다르니 하나쯤 더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않겠어요? 좀 헷갈리는 이름이지만 어쩌면 호랑이한테 달라붙다 못해 자기가 호랑이인 줄 착각하는 귀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야 호랑이는 산군님인걸요. 일년의 반은 사람에게 잡힐지언정 나머지 반은 사람을 잡아먹는 게 호랑이라고 들었습니다. 산의 최고포식자로 군림하면서 천적이라곤 무기 없이는 힘도 못 쓰는 인간뿐인데 서러울 게 뭐가 있고 무서운 게 어디 있겠어요. 귀신이 되려면 무슨 한이라도 맺혀야 할 텐데 호랑이한테 한이라니요? 말도 안 됐습니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요.
연호에 이어 실존인물까지 첫화에 등장하고 정말 놀랐던기억이 납니다. 제가 봐온 판타지는 현실에 없는 일이 일어나는 장르니 시대나 장소도 가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선시대라고 소개에 적혀있지만 그보다 더 정확하게 들어가니 사극 느낌이 물씬 났는데, 첫화부터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세월이 흘러 주인공은 훅 자란 채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박수와 죽대가 주는 균형감이 안정적이어서 이대로 팔도를 떠돌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다가 제목의 큰 사건과 조우하게 되는 전개를 상상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제 착각이었습니다! 이쯤되니 감상이 아니라 오답노트 같네요. 여하튼 본격적인 이야기도 주인공이 성인(맞죠?)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호랑이도 순식간에 들이닥치고, 다들 숨기는 것 없이 빠른 장단에 발을 놀리듯 이야기는 성큼성큼 나아갑니다. 읽을 때는 천천히 읽어서 몰랐는데 뒤돌아 보니 언제 여기까지? 싶은 점이 꼭 산군이 다니는 길 같네요. 흥겨운 판소리 같기도 합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지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기구한 팔자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해내리라 믿게 됩니다.
리뷰를 쓰기 위해 찾다 보니 창귀들의 이름이 나오는 ‘소질’이란 책을 첫화에 이름이 나오는 분이 쓰셨더라고요! 과연 호귀와 어떻게 이어질지, 전개가 계속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