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치관이 많이 바뀌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는 분위기라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을 가지라는 말은 누구나 다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말이다.
직장에 들어간 이후에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취업-결혼-육아라는 노선을 따라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여자들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경력단절이다. 한국에서 임신하고 다닐 수 있는 직장, 출산한 뒤에 육아를 병행하면서 다닐 수 있는 직장이 과연 얼마나 될까. 소수의 직장 말고는 없을 것이다. 휴직계를 쓸 수 있다손 치더라도 눈치보면서 최소한만으로 쓰거나. 휴직계를 썼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휴직이 끝나고 다시 복직했을 때, 알게모르게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눈치를 보다가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아직 아기니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러나 아이는 금방 자란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엄마들에겐 시간이 조금씩 생긴다. 그렇게 생긴 시간에 그만뒀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경력단절은 무겁게 엄마를 짓누른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윤수 씨에게는 이런 상황이 더 버겁다. 대학을 나오고 직장도 다녔지만 결국은 청소 노동자로 대학에서 일한다. 대졸인 경력단절 여성은 아무도 찾지 않아 고졸로 학력을 낮추어서야 간신히 청소 용역일이나마 얻을 수 있는 윤수 씨의 현실이 누구도 과장되었다고 비난은 못할 것이다. 마트의 파트타임, 청소 용역, 간단한 동네 아르바이트에서 자주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윤수씨같은 엄마들이니까.
단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해왔던 일을 더 이상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이상하다. 왜 그래야 하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능력이 사라지지는 않을텐데. 아이를 돌봐야만 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의 커리어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렵다.
윤수 씨와 같은 케이스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경력단절도 존재한다. 대학졸업 후 취업이 늦어져 생긴 경력단절, 이직이 쉽지 않아 생긴 경력단절, 투병생활로 인한 경력단절과 같은 경우는 흔히들 공백기라고 말한다. 이런 공백기가 긴 사람들도 직업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간신히 구한다고 쳐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백기가 길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게으르다거나 능력이 없다거나 그런 것은 아닐텐데.
윤수 씨의 생각처럼 이 세상은 이유가 어떻든 간에 경력단절인 사람들에게 처절할 정도로 차갑고 냉혹하다. 그들은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모든 사람이 잘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그럴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일한 것도 자신이고, 수수료를 뜯긴 것도 자신인데 괜히 비자금 조성에 기여한 것 같은 찝찝한 기분으로 악셀을 밟는다. 이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윤수 씨는 정의롭지 않은 상황에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는 ‘월급은 받을 수 있나?’ 같은 생각만 들었다. 상황을 감지하는 안테나가 점점 무뎌져 가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자신을 얼마나 죽일 수 있을까, 마침내 자신을 모두 죽인 후에는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까.
마지막 윤수 씨의 독백에 많은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