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과 소설의 공통점
먼저 죄송합니다. 소설 제목이 캬라멜 마키아또인데 냄새 나는 곰탕을 제목으로 내세워서 말입니다.
저는 소설쓰기가 곰탕 끓이기와 같은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끓일 때 곰탕 위로 떠오르는 불순물들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냄새나고 질 떨어지는 국물 맛이 납니다. 소설 역시 불필요한 문장이나 감정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독자들은 통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과잉묘사와 과잉감정이 이 작품에서 가장 독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제 생각으로는 작가님이 혹시 어떤 카페에서 어여쁜 처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어떤 소재를 떠올려 이 글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어떤 주제로 시작하느냐 혹은 어떤 단상으로 시작하느냐가 소설의 무게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 글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드러나지 않아 좀 답답했습니다. 중단편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라면 주제를 향한 치열함 아닐까요.
하지만, 이 글을 읽다보면 작가의 순수함이 느껴집니다. 순수함은 분명 작가의 미덕입니다. 잘만 연마한다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보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세세한 문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작가가 아니라 독자로 드리는 말씀이니 기분 나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에게 <말테의 수기>를 좋아하냐고 먼저 물어 보았습니다.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교과서로 들고 다녔던 게 <말테의 수기>였습니다. 어느 소설가는 이 소설의 첫 대목에 꽂혀서 작가가 되었노라고 고백했다지요.
그래, 이곳으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온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곳에 와서 죽어가는 것 같다.
나는 이 대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으며 열린 입으로는 요오드포름과 감자튀김, 불안의 냄새를 호흡했다. 뭐, 그랬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이 작가의 글에 나타나는 묘사들이 수상쩍었기 때문입니다. 릴케의 냄새가 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와 많이 비슷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릴케의 문장들을 포기했습니다ㅠ
대학의 정문이 반대편으로 옮겨가면서 한 때의 영광이 촉 떨어진 전구처럼 깜박거리는 이 골목길에서는 모든 것이 낡아갔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비가 내릴 때면 특히 빠르게 늙어가던 이 골목길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묘사들이 머릿속에 잡혀들지 않습니다. 글의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는 건 소설가로선 치명적 단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잘 쓰는 그들처럼 체화되지 않을까요? 완벽하게 훔쳐야 하는데 어설프게 모방하기에서 그치기 때문이 아닐까요.
누구도 이 노인의 젊은 때를 보지 못했으니 노인은 과거에도 노인이었고 미래에도 노인일 것이다.
이 구절은 제대로 훔쳤습니다. 그럴듯해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무언가를 아름답고 영롱하게, 릴케처럼 묘사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욕심을 버리고 힘을 뻬야 뜻하고자 하는 문장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 문장을 봅니다.
나는 나만의 외로운 풍경을 갖고 있고 삭은 보도블럭 사이에 둥근 구식 맨홀 밑으로 흐르는 하수 소리를 음악으로 느낀다.
이 문장들을 제 나름대로 쪼개 보겠습니다.
삭은 보도블록 사이에는 나만의 외로운 풍경이 존재한다. 둥근 구식 맨홀 저 밑에서 들려오는 하수 소리 또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남의 글이니까 이렇게 해볼 수 있지만 내 글 역시 대책 없습니다. 그래서 글이란 서로의 진심어린 평가를 먹으며 자라나 봅니다. 아니면, 고전문학, 명품 소설들을 필사해 보시기를 권유해 드립니다.
작가님. 이 글을 버리지 마시고 다시 한 번 고치고 고쳐서 완성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작가에게 있어 첫 글은 첫 아이와도 같으니까요. 주제의식과 문장력을 보강하여 좀 더 세련된 소설로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건필하세요!!
(앗! 쓰고 보니 대작가님들께 민망…스러워요. 작가님께 도움 드리려고 편지 형식으로 자유롭게 쓴 글인데 이렇게 전체 공개되네요. 몰랐어요. 어쩌나..부끄러워서…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