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없는 세상에서 바라옵건데 내가 당신을 사해도 될까요.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밤의 끝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22년 5월, 조회 102

「안다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책임을 맡아 짐. 또는 그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안담」으로도 쓰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대속이라고 볼 수 있겠죠. 소설에서 이 안다미는 마치 유전처럼 이어집니다. 맨 처음 디달로스 제로가 지구의 과학 기술의 시행착오를 ‘안다미’했듯, 소설의 시점에서는 시아가 후손들의 견뎌냄을 ‘안다미’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대속 했을까요.

소설 ‘밤의 끝’ 의 요소들은 이카루스의 날개 신화에서 모티브를 딴 것으로 추측됩니다. 실제로 ‘이카루스의 별’이라던가 디달로스(다이달로스) 제로 우주 비행선 등 신화단어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디달로스는 죄를 대속자로서 짊어졌으니 미궁에 갇힐 수밖에 없고, 도시는 미궁으로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를 얽맬 뿐입니다. 그리고 미궁 속에서 이카루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끝내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속자, 즉 안다미로서의 이카루스는 하늘을 동경하지 않습니다. 단지 구원받기 위해 처절하게 하늘을 희구할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카루스는 주인공인 시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에 있던 사람들 역시 하늘을 희구하고 항상 간 여행을 꿈꾸는 이카루스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구의 이카루스는 파국을 맞이하여 지구에 불지옥이 벌어져야 마땅했지만, 디달로스 제로의 사람들이 대신 대속했기에 그 사태를 피하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속으로 말미암아 시아와 미로에 있던 주민들 역시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희구의 한쪽에 한나에 대한 사랑이 있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요.

구원의 속성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대속자를 보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대속자 역시 인간을 사랑했듯이, 소설 ‘밤의 끝’의 대속자인 시아도 인간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대속자는 죄를 사하기 위해 희생의 역할을 맡았기에 모든 사람이 그를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양가적이어야 합니다. 대속자를 사랑하는 ‘인간’ 역시 신의 뜻을 따르는 성직자 ‘한나’임은 특기할 만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구원은 되지 못하였으나 사랑은 되었으니 그 입맞춤은 순교자를 위한 애도 뿐은 아닐 것입니다.

소설 내에서는 원죄에 대해서 누차 이야기 합니다. 그 것의 진위 여부는 소설 내에서 강력한 반전의 기제로 작동하는 것과는 별개로 앞선 이야기와 이어지며 종교적인 뉘앙스가 다소 섞여있습니다. 이카루스 신화에서 높은 하늘로 오르는 것은 일종의 금기로써 작동합니다. 이런 높은 곳을 향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변주는 타로 카드의 Tower의 의미처럼 반드시 무너지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원죄의 모티브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장면에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과연 비약일까요. 물론 아담과 하와는 높은 곳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죄로 말미암아 선과 악을 구분하기 시작한 그들의 자녀들이 바벨탑을 세워 높은 곳을 꿈꾸게 됐듯이, 이는 하나의 시발점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달로스 제로의 후손들이 스스로를 원죄를 짐지었다고 하는 부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그 것은 디달로스 제로 자체가 지구의 안다미임을 상기하는 부분임과 동시에,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선악을 구분함으로써 원죄를 ‘만들어 낸’ 것이 그 것입니다. 물론 물리적으로 주민들이 밖으로 나설 환경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거짓으로 미궁에 갇힌 이유를 만들어냈으니, 이 역시 원죄라 칭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대속자인 시아조차 그릇된 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공물(우주선)을 찾기 까지 황폐한 공간에서 헤매는 일은 어쩌면 광야에서 메시아가 헤매는 것과 묘한 기시감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컴퓨터의 인공지능 앤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은 광야의 시험을 끝마치는 것과 유사합니다. 여기서 사탄의 시험은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짐진 원죄가 있기에 그는 속죄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이 성경과는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길잡이인 고양이 코니가 있기 때문이죠. 코니의 존재는 한나가 교사에 의해 잡혀갈 위기의 지점에서 열쇠를 공략한 일과, 우주선을 찾는 길을 인도하는 장면 등, 여러 부분에서 작품 내에 다양한 우연의 역할을 하며 시아가 안다미를 완수하는 길을 돕습니다. 그렇게 시아는 코니의 인도를 따라 우주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90일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비콘을 궤도에 올리며 구원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맹목으로써 땅에 묶여있음은 지혜로 깨우쳤고, 미망으로 하늘을 향해가는 욕망은 구원에 대한 희구로 극복되었으니. 이 양가적인 욕망들이 교차되며 시아는 안다미로서 준비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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