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섹스 로봇 이야기를 한다는 의미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섹스로봇 SF를 잘 쓰기 어려운 이유 (작가: 전삼혜, 작품정보)
리뷰어: 류화린, 22년 5월, 조회 193

섹스, 얼마나 강렬한 울림이기에 2022년, 2가 셋이나 겹치는 이 시기에도 여전히 그 울림이 판을 두드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미 무수한 작품에서 철학적인 주제로 인간을 다루었으며 로봇을 다루었다. AI라는 인공 지능과 인간이 대결하며, 인간의 사회 구성은 1인에 가까워 지고 있다.

사회의 섹스 개념은 확장되며, 젠더 또한 모호함을 인정 받는 시기이며, 그만큼이나 가시화되는 현상들에 반발하는 보수적이라고 망상하는 이들의 생각 또한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또 섹스 로봇이다.

로봇섹스와 섹스로봇이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는 제발 매년 올라오는 심사평에서 제발 로봇과 섹스하는 글 보지 않게 해주세요를 얼마나 듣고 있나 돌아본다. 가름끈이 짧은 나도 SF독자 성명서 내고 싶은 심정이다.

이 소재는 마치 시인들의 젖가슴처럼 치트키로 사용된다. 아무리 잊으려해도, 때가 되면 돌아오는 황사에서 언제나 함께하는 미세먼지가 된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정식으로 출간된 작품, 영상화 된 작품은 물론이고 외계인, 외계생물, 외계 생명체와의 결합이 은유적으로 혹은 직설적으로, 심지어 탈 인간화의 흐름이 보이는데.

여전히 공모전에는 제발 섹스로봇 이야기 그만 써주세요. 하고 외치고 있다. 심지어 sns에서도 시기만 되면 떠오르는 #섹스로봇 #로봇섹스 에 대한 집착은 과연 성기 크기에 집착하는 현실을 그림처럼 비추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인간의 성기가 작아서 죽여버리는 섹스로봇의 이야기도 새삼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면 로봇에 박아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은 취향에 맡겨 둔다. 이때의 로봇의 형태 또한 취향에 맡겨 두도록 한다.

 

작품을 쓰는 것은 하나의 결과물을 꺼내 놓는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어떤 만화 작가가기 말한 대로 엉덩이를 대로에 드러내놓는 말이다. 이 문장은 다소 완곡하게 수정을 거쳤음을 적어둔다.

예전에 어떤 블로거가 꼬우면 작품으로 이야기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이 말도 어마어마하게 쓰였기 때문에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질리지도 않고 돌아오는 김장철마냥 되살아난 로봇섹스의 망령은 기어이 2022년에도 배추 가격 상승과도 같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덕분에 한동안 나의 타임라인은 모조리 섹스 로봇 섹스 로봇을 되뇌이는 불타는 아수라장이었다. 거대한 섹스로봇 돔에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 단어를 블락해 버리고 싶을 만큼.

아마도 이 작품과 이 글의 탄생은 그래서인가싶다. 그렇다면 나는 제철 섹스로봇 이야기를 반가워 해야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한 고뇌는 끝나지 않았다. 매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자칭 엄청나게 참신한 섹스 로봇 소설을 쓰고, 그걸 봐야 하는 여러분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섹스 로봇은 존재한다. 이미 그 행위는 충분히 기계와도 가능하고, 심지어 그래픽으로 구현된 이미지와 연동하여 성기를 자극하는 형태로도 드러나 있다. 고도로 발달한 현실 속에서는 전력과 버튼만, 혹은 휴대폰 어플을 이용하면 혼자서도 로봇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약간의 검색과 충분한 돈만 더해지면 그 기능에만 충실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참고로 A.I.개봉이 2001년이다.(이 부분에 욕설이 적혀 있었다.)

 

SF라는 단어가 섹스 판타지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또다시 돌아온 섹스해 주는 로봇이야기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이 작품은 로봇과 섹스의 의미와 정의에서부터 다시 돌아가 되짚어 준다.

 

과학의 발달에 깊은 이야기를 하기엔 지식이 얕아 파고 들 수 없기에 길게 말은 못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기존의 개념, 상식을 벗어나 새로 발견하고, 재발견하고 증명하며 나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진화의 형태가 아닌가 싶은데도 2002년도 아닌 2022년의 SF소설은 섹스해 주는 로봇 이야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나의 섹스로봇은 다르다능, 이건 진짜 대단한 것이라며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젖가슴은 보통 대부분의 여성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향처럼 다루는 무수한 시 처럼. 어머니가 그리우면 모신 곳에 가면 될 것을 왜 단어로 가슴가슴 거리고 있는 것일까.

까놓고 말해서 내 말 다 들어주는 유순한 안드로이드와 모든 것을 받아주는 마망섹스를 하는 판타지는 정말 대체 어디에 어느 부분이 참신한지, 알 수 없는데도 나오는 것은 과연 작품을 쓰는 작가의 수요인가, 공급인가. 그렇기에 이 작품은 로봇 섹스에 대한 수요의 기대를 꺾으며, 원하지 않은 공급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청명한 울림을 들려 주고 있다.

 

부디, 방황하는 이방인과도 같은 예술가, 모든 것을 받아주는 섹스 해 주는 로봇, 일하느라 뼈빠지는 애비와 불쌍한 어머니와 아무튼 부서지고 각성하고 깨달음을 얻는, 그렇게 참신하길 바라며 적혀지며 읽혀지는 작품과 쓰는 이들에게바란다.

이 작품을 읽고 2022년을 넘어서는, 하다 못해서 A.I.에 나오는 섹스해주는 로봇의 섹시함 이상의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 참고로 그 로봇은 주드 로였고, 1972년 생이시다.

 

내년에는 섹스로봇 철이 안왔으면 좋겠다.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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