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신’
그와 관련된 예언은 중요한 소재임과 동시에 작중에서 위험한 지식으로 그려집니다. 예언을 연구하면 이단으로 몰릴 수 있고 예언자들은 탄압 받아왔으며 아마도 왕정을 뒤흔들 잠재력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잊힌 신의 사제는 마법사처럼 현실 세계와 현실 저편의 세계를 오가며 그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며 수긍하는 대신, 현실의 이면을 읽어내고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예언과 결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로서는, 이 작품이 잊힌 신의 예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잊힌 신이 내리는 계절』의 세계는 세세한 지점까지 우리 사회와는 다른 원리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현실과는 다른 체계로 행정 시스템이나 대학이 운영되고 있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처럼, 이 세계 역시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인 형태인 점도 흥미로웠고요. 예컨대 작품의 주 무대인 대학 길드는 길드원끼리 신분을 내세우지 못하도록 하지만 정작 여학생을 차별하고 계급적 배경이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등 평등한 질서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화국의 이상을 내세우는 이들도 대부분 상류층 남성의 상상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요. 가정폭력은 사사로운 문제로 여겨지고 신분이 보증되지 못하는 이들은 시민의 범주에 들어올 방법이 없습니다. 법 체계에 보호 받지 못한 이들이 만든 질서 역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사적 폭력을 독점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공권력과 유착되기도 하고요.
이런 세상 속에서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현실과 불화하면서 주어진 조건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 분투합니다. 사실 주인공 이벨린 외의 다른 주요 인물들 역시 각자 한 작품의 주인공 자리를 꿰찰 만큼 개성이 강해요. 살아온 자취도, 향하는 길도, 성격과 능력도요. 수배자의 아들인 제바이는 천재적인 언어 능력으로 다른 사회의 지식을 번역해옵니다. 반쪽짜리 마법사인 리안도 정체불명의 장학생인 난넬도 예사롭지 않은 역정을 거쳐왔고 잠재력도 대단하죠. 정식 거지인 이녹과 버밀리언의 집 아이들도 대단한 비밀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개털들 외에도 알렌이나 유디트 같은 조력자 위치의 인물들 역시 개성과 매력이 대단합니다. 이들 모두 주어진 현실이 당연하게 여기라고 하는 이야기를 의심하며 현실을 구성하는 맥락을 읽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인물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엮이고 친구가 된 덕에 서로를 통해 몰랐던 현실을 접하고 서로의 지평을 넓혀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싸우고 부딪히다가도 똘똘 뭉쳐서 역경을 헤쳐나가기도 하면서, 각자가 원하는 바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잊힌 신이 내리는 계절』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동치는 시국 속에서 이들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그 여정을 계속 따라가고 싶게 만들어요. 어떠한 형태로든 혁명이 일어나고야 말 것 같은데 그렇게 당도한 세상은 또 누군가를 배제하지는 않을지, 그리고 현재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이 전부 밝혀질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