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지옥이여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기이해 보이는 보통의 하루 (작가: 해모아, 작품정보)
리뷰어: SewoL, 22년 2월, 조회 74

1.

 

오늘은 또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얼마 전 예뻐서 산 옷에 눈이 가지만, 친구들 만나러 가는 자리에는 조금 과할 것 같다. 그렇다고 후줄근한 츄리닝과 모자를 고를 순 없다. 친구들에게 종일 집 안에서 할 일 없이 뒹굴대다 급히 나온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러다 결국엔 약속 시간에 늦는다.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벌써 머리가 아프다. 시간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은데, 뭘 입을지 고민하다 늦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건 또 실‘있’는 사람이 되는 걸까?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했다는 말인데, 우리가 타인과 교류하며 떠올리게 되는 수만 가지 고민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찰떡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크든 작든 관계망 속에 속해 있으면서 타인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이루며 살아간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눈 비비며 마주하는 타인이든, 스마트폰 주소록이나 카톡 친구 목록에 있는 타인이든, 구독과 팔로우로만 연결된 타인이든 상관없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타인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미친다.

 

관계망 밖에서 살아남기 힘든 인간이지만,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매 순간 타인의 눈에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를 고민하고, 나의 본모습이 타인에 의해 부정당할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면, 정말이지 하루하루 숨 막히는 나날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세상은 또 겉보기와 다르게 지나치게 일방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지옥이 있으면 천국도 어딘가에 마련돼 있는 법이다. 이는 ‘무협’의 세계관에서는 매우 당연한 이치인데, ‘찌르기’라는 초식이 있으면 ‘막기’라는 초식으로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물은 불을 이기고, 불은 쇠를 녹인다는 오행이나, 가위바위보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고로,

타인은 지옥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나를 의식하지 않는 것 또한 타인이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나가든, 친구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약속 시간에 늦어도 친구들은 나를 지각쟁이라고 타박할지언정 실없는 사람으로는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친구로 지내오는 동안 그들이 나를 한 번이라도 그렇게, 내가 우려하는 방식으로 대한 적이 있던가? 설사 그들의 눈에 비친 내가 나의 본모습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들이 그것을 언급하며 나의 본성을 재단하려 한 적 있던가? 어쩌면 이 모든 고민과 우려는 그저 나의 착각이자 기우에 불과한 것 아닐까?

 

 

어쩌면 우리를 정작 지옥으로 몰고 가는 것은 타인의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다만 우리가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불러일으킨 착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눈에 내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그 모습을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우리는 갖은 상상으로 채워내며 스스로 고통받고는 한다. 타인의 시선이 빚어낸 제약이란 결국 내가 나에게 주는 형벌, 자학이다. 어딘지 껄끄럽기만 한 결말이지만 『기이해 보이는 보통의 하루』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아무리 이상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라도, 우리는 또 그렇게 그냥저냥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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