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란 모든 인간이 갖는 보편적인 권리입니다. 여기서 모든 인간은 말 그대로 모든 인간입니다. 가난하거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취향이 독특하다고 하여 그 사람의 인권이 부정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범죄자도 포함됩니다. 가해자에게도 인권이 있죠.
물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려 할 때, 그것을 막기 위해 그 사람의 인권을 제한할 수는 있습니다. 그 기준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흔히 말하는 기준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해자의 인권을 제한하는 것은 그 가해자가 지금 현재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가해자가 과거에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했다거나, 앞으로 인권을 침해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만 가지고는 가해자의 인권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사적 복수에 대해서도 말해보죠. 가해자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처벌은 언제나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공적인 방법으로 가해져야 합니다. 사적 복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죠.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정당 방위가 아닌 한은요.
하지만 이런 원칙은 너무 쉽게 무시됩니다. 물론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가해자가 떳떳하고 공권력은 눈을 돌리는 게 너무나 흔한 현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집단 괴롭힘 사건의 가해자를 집단으로 괴롭히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 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금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이 적용되는 함무라비 법전의 시대가 아니니까요.
소설 속의 ‘나’는 집단 괴롭힘의 가해자입니다. 결국 그 피해자인 C는 자살을 하게 되고 ‘나’는 벌금형을 선고받지만, 신상이 공개되고 그때부터 집단적인 따돌림이 시작됩니다. 또한 C에 대한 죄책감에도 시달리죠. 소설은 전체적으로 그런 상황에 처한 ‘나’의 심리를 현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 같은 경우에는 ‘나’가 가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부터 ‘나’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를 망설였습니다. 만일 ‘나’가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 않는 정말 지독한 가해자라면 C의 환영에 의해 고통받기를 바래야 할 테고, ‘나’가 과도하게 처벌받는 상황이라면 그 분노의 화살을 다른 곳에 돌려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소설 속의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었습니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C를 괴롭히기 시작한 건 맞지만 정말 심한 일을 한 건 다른 아이들이었다고 합니다. C를 불러내서 폭행하긴 했지만 C가 자기 가족에 대한 욕설을 퍼뜨렸다고 (아마도) 오해를 한 게 원인이었습니다. C의 자살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긴 하지만 그에 대한 죄책감 보다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한 억울함이 큰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나’에 감정 이입을 하기도 그렇다고 무작정 비난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가 옥상에 올라갈 때, 어떤 선택을 할 지에 대한 긴장감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현실은 그런 식이겠죠. 그런 면에서 작가의 묘사는 현실적이고 냉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인 만큼, 이왕 ‘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좀 비현실적이더라도 ‘나’의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몰아 붙였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가해자에게 집중되는 비난의 화살을 조금 다른 쪽으로 돌려보고자 하는 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소설에서 화살이 돌아갈 수 있는 대상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보다 심한 괴롭힘을 가하고도 상대적으로 편하게 살고 있는 부자 친구들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나’에게 과도한 비난을 가하고 있는 익명의 무리들입니다. 리뷰 앞부분에서 길게 서론을 늘어놓은 것 처럼, 저는 후자에게 어느 정도 화살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입장입니다.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작가가 좀 더 ‘나’의 입장을 변호하는 서술을 하고 주변 사람들이 가하는 또 다른 집단 따돌림을 좀 더 지독하게 묘사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집단 따돌림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듯한 글을 쓰는 건 부담이 될 겁니다. 작가가 남긴 코멘트에서 그 부분에 대한 많은 고민이 느껴졌습니다. <C>라는 제목을 중간에 한 번 바꿨던 것 같은데, 뭐였을까 궁금해지는 군요.
작가가 쓰고자 한 것이 ‘집단 괴롭힘의 가해자가 끝없는 공포에 휩싸여 살아가는 권선징악적인 상황’인지, ‘가해자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폭력에 대한 고발’인지 글을 다 읽고 나서도 잘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그만큼 ‘나’라는 인물의 묘사가 그 중간 어디쯤에 있습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잘 담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이라는 장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헛다리를 짚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작가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소설이라는 장치 속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면, 그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되겠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한, 가해자의 인권도, 가해자의 인권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도 보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