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감히 리뷰를 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이벤트도 리뷰 두 개를 못 채워서 완수하지 못했죠.) 그러다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달바라기님의 리뷰 광고에 있는,
“원하는 꿈, 대신 <이것>” … <이것>을 맞춰보세요..(?!)
라는 문구를 보고 용기를 냈습니다. 글을 소설적인 측면에서 평가하는 건 엄두가 나지 않지만 퀴즈라면 풀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리뷰어분이 이미 정답을 맞추신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답은
“광고”
사실 글 속에는 굉장히 많은 힌트가 여기저기 숨겨져 있습니다. 주인공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물건들을 사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언급되고,
옛날 영화관에서 관객 몰래 한 프레임씩 숨겨놓던 팝콘과 콜라 사진이 지나가는 것보다 빠르지 않았을까.
라든가,
광고는 다 어딜 간 건지. 요즘엔 눈이 즐길 곳이 없어.
와 같은 문장이 슬쩍 들어있기도 하죠.
마치 사건에 대한 힌트를 주는 듯한 꿈의 장면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면, 작품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계속 돈을 지불하는 중고책, 진통제, 번개 학술대회, 카페, 커피잔, 커피용 발효유, 빨간 드레스 등이 모두 꿈에서 광고된 것들이라는 점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제목인 <블루베리 초콜릿 올드패션> 역시 주인공이 광고에 넘어가 구매한 물건 중 하나죠. 그리고 결국은 그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무의식을 파고드는 고도로 전문화된 광고가 숨막힐 정도로 가득 찬 세상. 신문에 노골적으로 싣는 광고는 이제 의미가 없어진 그런 세상을 이 작품은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아마도 그 꿈들이 모두 광고였다는 사실을 마지막에 깨닫게 하는 반전을 선사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초반부를 마치 이 소설이 미해결 사건을 꿈을 통해 풀어가는 추리 소설인 것처럼 끌고 갑니다. 차가운 상자 – DC SEL COA – COLD CASE 의 애너그램을 이용하여 미해결 사건을 강조하며, 심지어 세스카-솔베던 역시 UNSOLVED CASES 의 애너그램입니다. 이 정도면 독자는 이것이 추리 소설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죠.
저 역시 거기에 낚여서 신나게 글을 읽다가 후반부에 줄줄이 등장하는 구매리스트가 꿈에서 광고된 것이라는 것 조차 다 놓쳤습니다. 빨간 드레스에 가서야 작가가 미해결 사건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과 사실 이 소설의 핵심은 광고였다는 것을 깨닫고 허탈해 했죠. 다시 되짚어 올라가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자 그제야 작가가 아무렇지 않은 듯 끼워 넣었던 문장들에 숨어 있는 암시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로 읽은 글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똑같은 내용의 글을 한 번은 범죄 소설로, 또 한 번은 SF 소설로 두 번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문제는 SF 소설 쪽은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범죄 소설은 방치되었다는 점이죠. 처음 읽을 때 범죄 소설이라는 인상을 너무나 강하게 주었고 또 과도하게 디테일 했기 때문에 그게 단순히 광고라는 키워드를 숨기기 위한 맥거핀이었다고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이 소설을 다시 세 번째로 범죄 소설의 관점에서 읽게 됩니다. 작가가 준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배경 정보를 검색까지 하면서요. 이스다렌의 여인이라는 사건은 실제 사건이더군요. 작가가 세 문단에 걸쳐 서술한 사건 개요와 거의 동일한 사건이었습니다.
세스카-솔베던은 주인공이 가져다 준 사건 자료를 바탕으로 광고를 섞어 넣은 꿈을 재구성했고 주인공의 잠재의식은 거기에 어렸을 때 읽었던 미스터리한 사건과 피해자의 옷에 대한 위화감을 섞어 넣었습니다. 탐색형 꿈을 통해 얻은 단서라면 그 두 가지겠죠. 그걸 통해 주인공은 2029년 6월 29일에 벌어진 사건이 1970년 쯤에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사건과 유사하다는 것과 발견된 가방에 들어있던 옷이 시체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냅니다.
주인공은 꿈의 마지막 부분은 끝내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부분에서 주인공은 이런 질문을 던지죠.
“당신이 아까 입고 있던 옷은 어디 있어요?”
만일 가방에 들어 있던 옷이 피해자의 것이 아니라면 피해자가 입고 있던 옷을 찾아내야 할 겁니다. 상당히 길게 묘사되는 꿈의 마지막 부분과 주인공이 계속 기억해내려 노력하는 걸로 봐서 그것이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자연스럽겠죠. 또한 인도산 벌꿀이 함유된 진통제와 베네수엘라의 번개 학술대회가 광고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실제 이스다렌 사건의 피해자가 혈액에서 수면제가 검출되었고 남미에서 치과 치료를 받은 점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주인공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단서로 활용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세스카-솔베던이 사용하는 꽈리 열매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건이 일어난 6월 29일에 숨겨진 의미가 있진 않을까요. 검색을 해 봐도 연결점을 찾을 수는 없더군요. 여하튼 이런 수많은 단서들을 놔두고 주인공은 그냥 사건 해결을 포기하고 맙니다. 저는 왠지 작가가 끝까지 범죄 미스터리 부분을 놓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포기하고 급히 마무리를 지은 건 아닐까 싶더군요.
물론 여기서 범죄 부분을 더 끌고 나간다면 근미래의 광고 기술이라는 주제가 희석이 되어 버릴 겁니다. 하지만 광고라는 주제에 집중하고자 했다면 범죄라는 소재는 적당한 수준에서 정리하는 게 좋았겠죠. 저 처럼 풀 수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헤메는 독자들이 없도록요.
가방의 태그에 그려져 있던 장미를 입에 문 작은 새와 로즈버드라는 태그, 그리고 코멘트에 언급하신 불타는 썰매는 검색을 통해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에 대한 내용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디테일과 완벽한 스토리텔링으로 유명한 영화라더군요. 세 번이나 다른 관점에서 소설을 보고 이 리뷰를 쓰는 과정 모두가 저에게는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달바라기님이 뿌려 놓으신 디테일이 완벽한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졌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