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을 통해 펼쳐지는 몽환의 세계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블루베리 초콜릿 올드패션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하늘, 17년 6월, 조회 86

도넛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던 신우는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섭니다. 그리고 5분 거리인 건물 ‘세스카 솔베던’에 들어섭니다. 이 곳은 무의식 체험 서비스를 해 주는 업체로, 그는 이를 통해 무언가를 찾고자 합니다. 객실에 들어가 전극이 달린 안경을 쓰고 알약을 먹자, 신우는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블루베리 초콜릿 올드패션’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입니다. 작중에서는 2029년이라고 해요. 지금과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이지만 이 세계에는 지금은 없는 한 가지 기술이 도입되어 있는데요. 바로 꿈을 통해 무의식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인 신우는 미제 사건의 힌트를 얻기 위해서 이를 사용하는데, 보통은 쾌락을 얻기 위한 기술인 듯 해요. 여기서는 ‘오락형 꿈’, ‘탐구형 꿈’으로 구분되고요.

주인공이 경찰인데다,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입장이고 극 중 사건을 자세하게 소개해서 마치 추리물의 도입부 같지만 ‘블루베리 초콜릿 올드패션’은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이 단편에서는 초반부에 제시되는 사건의 범인이나 그에 대한 진상이 나오지 않아요. 그냥 약간의 힌트만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결정적일 수도 있는데 그게 정말로 결정적인지도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작중에서 중요시하는 건 미래 기술의 활용과 그를 통해 이끌어내는 꿈같은 분위기입니다. 주인공이 ‘세스카 솔베던’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어떤 것을 겪고 보는지가 핵심이고요. 어쩌면 현실보다는 꿈이 더 중요한 작품인 것 같기도 해요. 꿈에 대한 묘사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고 그것을 아주 느릿하게 풀어내면서 독자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하고 있거든요.

날개 없는 꿀벌을 먹으면 두통이 사라진다든가, 병 속의 코끼리가 춤을 춘다든가, 카페가 서류상자로 변해서 주인공의 주머니 속에 들어간다든가. 현실의 사건들이 있지만 꿈 속을 부유하면서 그런 광경들을 계속 보고 체험하는 쪽의 이미지가 훨씬 강해요. 그러고 보면 SF인데도 판타지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요. 저런 부분들을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밀하게 풀어내는 게 이 단편의 가장 큰 매력이거든요.

미래 기술 활용이나 장면 묘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시대인지는 알 수 없어도, 아마 저 시대에도 도움은 안 되지만 흥미를 자극하는 것들이 많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저 시대가 된다고 해서 연예인이 광고를 하지 않을 리는 없지요. 아마 주인공이 먹고 있는 초콜릿 도넛도 디지털 신문의 지면에서 절대 그런 걸 입에 달고 살 리가 없는 빼빼마른 연예인이 광고하고 있을 테고요.

경찰인 신우가 무의식을 통해 사건을 뒤쫓는 것도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 같지가 않아요. 무의식 속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려면 어쨌든 관련된 경험이 잠재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주인공이 맞닥뜨린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아예 진상을 모르잖아요. 점술의 영역이 아닌 이상 꿈에서 정답을 알려주는 건 불가능한데도 여기서 꾸는 꿈들은 그런 정답에 유사한 길을 가르쳐 줘요. 작중에선 오래 전에 유명한 사건이었던 북유럽의 사건과 비슷하다는 게 추적의 열쇠가 되지만 평행이론을 구현하는게 아닌 이상 그런 게 수사의 단서가 될 수는 없고요(심지어 그 사건은 미제이기까지 해요).

마지막에 부질없는 시도를 했다며 자책하는 걸로는 모자란 것 같아요. 세스카 솔베던은 무의식 체험 서비스를 하는 곳이니까, 이걸 수사에 응용하려면 여기에 어울리는 다른 상황들이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실제로 살인 현장을 목격했는데도 너무 충격을 받는 바람에 그에 대한 기억이 다 날아가 최면으로도 복구가 되지 않는 목격자의 기억을 되살린다든가, 그렇게 연결되어 있을 때 더 효율적인 기술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이 작품은 기교를 상당히 많이 부리고 이런저런 기술들을 사용한 멋있는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요. 세련되고 아름다운 스타일이지만 과하게 쓰일 경우에 일반 독자들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쩌면 종이책 스타일이 웹에서 사용되어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 적정선을 찾으면 본디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이 더 살아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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