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마감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다 보니 재미있는 좀비 소재 작품들이 연이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녹차빙수님의 작품 ‘죽음에서 도망치다’ 또한 좀비에 대한 재미있는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브릿G 독자 여러분들께 추천해보고자 합니다.
공포물은 어찌 됐든 일단 무섭고 봐야 하듯이, 좀비물이라 하면 일단 그 바닥에 암울함과 절망의 분위기가 깔려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좀비물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좀비물에서는 좀비들의 등장 이유를 깊게 파고 들지 않습니다. 물론 여러 작품에서 좀비의 뿌리(?)에 대한 여러 재미있는 설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만, 광견병이던 흑마술의 희생자이던 간에 독자들에겐 크게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꿈꾸던 가장 끔찍한 지옥 같은 멸망 속으로 들어왔는데 그 기원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많은 작가와 제작자들은 저마다의 고민 속에 죽음에서 돌아온 존재들에 대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녹차 빙수님은 좀비를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진짜 지옥에서 도망쳐 온 존재’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흥행에 성공한 어떤 좀비 영화에서는 좀비가 나타난 이유를 ‘지옥이 사람으로 넘쳐나서’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녹차 빙수님의 세계관에서는 그마저도 아주 행복한 상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혼조차 겁을 먹고 도망칠 정도로 상상치도 못 했던 고통과 공포의 결정체가 사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이야기는 매우 정석적인 좀비물의 패턴을 따라 진행됩니다. 좀비가 나타나고 국가 시스템은 마비되고 주인공과 사람들은 저마다 뭉쳐서 절망 속에서도 살 길을 도모합니다. 이런 상황에 약속처럼 반드시 등장하는 약탈자 무리들, 그리고 오히려 더 활개를 치는 사이비 종교 집단들과 염세주의자들. 그러나 정부의 비밀 연구를 진행했던 사람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알고 있던 것과는 뭔가 다릅니다. 이런 저런 실험 끝에 좀비에 대한 데이터를 얻게 된 사람들에게 남은 건 지금보다 더 깊은 절망과 공포 뿐입니다.
다른 공포물과 구분되는 좀비물만의 매력이 ‘절망’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추락하듯 절망의 끝까지 내려가보는 경험을 안겨주는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살아있는 삶에서 겪는 절망과 공포가 죽음 후 느끼는 것에 비하면 바다 속 물방울 정도의 하찮은 정도라면, 그래서 그걸 경험한 영혼이 죽음에서 도망쳐 나와 썩은 육신에라도 돌아가려 하는 상황이라면 이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요?
수 많은 좀비물을 읽어보았는데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경험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녹차빙수님의 상상력에 엄지가 올라가는군요. 철학을 통해 좀비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 또한 신선하고 무엇보다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는 글의 순수한 재미 또한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좀비에겐 영혼이 없다는 전제를 염두에 두고 좀비물을 즐겨 왔습니다. 제 정신을 조금씩 찾거나 치료의 형식으로 원상복구되는 좀비도 있긴 했지만, 극도의 공포로 인해 찢겨진 영혼을 가진 채 돌아오는 좀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아마도 좀비의 짓이겨진 얼굴과 지르는 괴성이 조금 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