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선율의 우주
~ 밀리의 음악과 자유의지에 대하여 ~
mili라는 밴드에 대해서 소개를 하자면
밀리의 곡의 스타일을 따지자면 피아노와 스트링을 중심으로한 서정적이면서도 classical 스타일이 주라고 볼 수 잇습니다. 그러면서도 Space Colony의 곡처럼 밴드풍의 문법에 충실한 곡 뿐만이 아닌 최근의 앨범 To kill a living book의 수록곡 Iron Lotus나 Children of the City 처럼 전자음악 스타일의 곡도 소화해내는 등 다채로운 문법과 색채를 보여주는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작가님이 소개해주신 곡들을 보면 엑스칼리버라는 곡은 내적으로 imagined flight -> Cerebrite -> Space Colony의 순으로 스토리가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리뷰에서는 각각의 곡들의 리뷰와 함께 소설과의 연관성을 가볍게 짚어보고자 합니다.
밀리의 곡은 재미있는 요소가 많습니다.
imagined flight의 가장 큰 특징은 조성(음악에서 으뜸음에 의하여 질서와 통일을 가지게 되는 여러 음의 체계적 현상/지식백과)을 넘나드는 드라마틱한 구성입니다. 처음의 화려한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전개되는 서정적인 선율은 이후 메이저 선율의 부드러운 느낌을 거쳐 마치 선언같은 다음의 가사에서 경직됩니다.
Repress
억압하라
Manipulate
자극하라
Dominate
지배하라
그렇게 경직이 되는 순간 분위기는 급반전 되며 위험스러운 음정은 글리치의 사운드와 합을 이루며 점진적으로 크례센도 되듯 고조된 후 대단원에 이르게 됩니다.
Rewind your clockwork mainspring
네 시계 태엽을 다시 감아
Unite yourselves as one
너 자신을 하나로 합쳐
For the good of everyone
우리 모두를 위해
시계 태엽이라는 것은 기계장치의 부속품 중 하나입니다. 그것이 ‘너’라는 대상으로 집약된다는 점에서 이 곡은 기계 장치의 등장을 암시함과 동시에 주인공의 존재와 엮여지는 감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Arcturus, Spica, Cor Caroli, Denebola
아크투루스 – 스피카 – 콜 카롤리 – 데네볼라
That will be our diamond ring
그게 우리의 다이아몬드 반지야
Outer space ceremony
우주 공간에서의 결혼식
Know that my love is present
내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줘
그런 기계장치로 이뤄진 인간과의 결혼은 우주적인 배경에서 이뤄집니다. 그 것의 예물은 별들로 이루어진 다이아몬드입니다. 이 매개물은 작중 망가져가는 선배의 희망이 ‘나’에게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역할을 합니다.
cerebrite의 인트로는 격렬한 스타카토 피아노와 스트링베이스의 폭풍 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연주는 보컬이 이어받으며 격렬함을 유지하다가, 4박자로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긴장이 풀립니다. 그렇게 이어진 선율은Captivating hypnotizing fascinating utopia 부분에서 밝은 선율과 서정적인 선율이 대조 되며 텐션을 유지합니다. 그렇게 곡은 다시금 인트로의 보컬 파트로 돌아오며 격렬한 분위기와 함께 마무리됩니다.
Spin and spin
돌고 돌아
Forget all your worries
네 걱정은 다 잊어버려
Spin and spin
돌고 돌아
Forget your identity
네 정체성도 잊어버려
Step on my shoulders
나의 어깨를 딛어
Do you see the new lovely lonely empty heavenly world?
새롭고 사랑스럽지만 외롭고 공허하면서도 신성한 세계가 보이니?
‘엑스칼리버’에서도 어깨를 딛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그 사람의 유지를 잇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만큼 의미심장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으니 곧 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외롭고 공허하면서도 신성한 세계에 닿기 위해서 걱정과 불안은 물론 정체성까지 잃어버려야만 닿을 수 있습니다. 이 역설적인 유토피아는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Set your sails
너의 돛을 펼쳐
Age of Discovery
대항해 시대가 왔으니
Godspeed into your dreams
너의 꿈에 성공을 빌어줄게
Sinking spaceship falls out into the sky
가라앉고 있는 우주선은 하늘로부터 떨어져
And your life goes free
그리고 너의 삶은 자유롭게
Dancing in vacuity
공허속에서 춤을 춰
Bursting in the sky
하늘에서 폭발하고 있어
shimmering twilight
반짝거리는 황혼
Galaxies ignite
불타는 은하
Stars shall nevers rise
별들은 다신 떠오르지 않을 거야
이들은 유토피아를 향해 우주를 항해하지만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이기 때문일까요. 결국 닿지 못해 파국에 이릅니다. 하지만 너의 꿈에 성공을 빌어준다는 것으로 보아 이 파국은 예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끝내 별들은 다신 떠오르지 않을 거야라는 부분에서 나의 죽음은 결국 벌어집니다.
Space Colony는 밴드풍의 곡으로 정적과 동적의 완급 대비가 훌륭한 작품입니다. 정적인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우주비행사 목소리의 샘플링으로 시작된 노래는 이후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기타 솔로로 첫 매듭을 가집니다. 이후 코드만 짚은 피아노와 심플한 기타 리프와 신스 사운드로 나직히 진행된 노래는 코러스에 이르러서 다시 한 번 동적과 정적의 대비를 이룹니다. 그렇게 정적으로 대담처럼 진행되는 보컬 이후에는 기타 솔로로 이어지며 한번에 쉼을 거친 후 코러스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정적과 동적의 대비가 적절히 이뤄진 곡은 적당한 긴장과 함께 유려한 느낌을 줍니다.
夢
유메
꿈
I see you.
나는 너를 보았다.
創世
소세이
창세
I say you.
나는 네게 말했다.
夢
유메
꿈
I see you.
나는 너를 보았다.
I know,
나는 안다,
You may die.
너는 죽을 것이다.
유메 – 소세이의 라임으로 이뤄진 이 부분은 끝내 네가 죽을 거라 하며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작중에서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던 선배의 존재로 반영된 듯 보입니다. 선배의 자각은 후에 이르러서는 끝내 프로젝트의 종막 – 방주의 파괴로 이어집니다. 다음을 살펴보면 명징하게 알 수 있습니다.
飛び立つ。
토비타츠.
날아서.
僕らを乗せた箱舟は、
보쿠라오 노세타 하코후네와,
우리들을 태우고 있던 방주는,
重さに逆らい続けていだ。
오모사니 사카라이 츠즈케테이타.
무거움에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었다.
壊れた。
코와레타.
부서졌다.
僕らの希望の箱舟は、
보쿠라노 키보우노 하코후네와,
우리들의 희망의 방주는,
弾けた夢と堕ちて消えて行った。
하지케타 유메토 오치테 키에테 잇타.
터져버린 꿈과 함께 추락해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엑스칼리버에 대한 곡의 리뷰는 넘어가겠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길 바래요.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칼리버는 희망으로 남습니다.
엑스칼리버의 주요한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 미래 생존 가능한 행성으로써 기능을 잃어버린 지구는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해 우주 밖으로 자체적인 생태계 시스템을 갖춘 방주를 띄우기로 합니다. 그 것의 리더인 선배는 프로젝트에 꼭 필요한 모듈을 고철덩어리 산에서 찾아내며 프로젝트는 급속도로 진전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프로젝트에 필요한 계산은 잘못되어 있었고,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지만 프로젝트는 중단되지 않고 끝내 실패합니다. 선배는 프로젝트가 폭사하기 마지막에 유언으로 자신의 방에서 정리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내가 그녀의 방에서 찾아낸 것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사실 아카식 레코드라는 전지한 시스템을 숭배하는 종교인이었고, 그녀의 행동들은 전지에 근거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일기의 마지막에 나에게로 유지를 남겨둡니다. 나는 결국 그녀의 유지를 받들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끝내 성공시키며 생태계를 조정하는 AI와 동화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유지는 이어져서 희망이 됩니다.
엑스칼리버의 중요한 맥락은 유지를 잇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죽음이 (유사) 전지성과 맞닿아 있음은 이 작품의 주요한 반전이자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이는 그녀의 모습이 점차 망가져가는 것 뿐만 아니라 작 중 누차 언급되는 그녀의 완벽해 보이는 모습은 이런 전지성의 복선이었습니다. 그렇게 홀로 왕좌에 앉아 선배의 일기장을 읽은 후 그녀의 이면을 깨닫고 유지를 잇는 부분의 묘사를 보면 마치 왕위를 이어받는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끄는’ 두 번째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그녀의 기록에 적혀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 모호함과 좌절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작가님은 나와 선배의 관계를 치열하게 조명합니다. 너의 존재로 인한 위안, 상처, 그리고 공포의 극복까지 그저 자신이 마무리되고 너에게 넘어가는 과정의 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미래를 알 수 있는 인간이 아닌, 미래를 직접 부딪쳐야지만 알 수 있는 존재가 미래를 이어가는 것은 존재론적 희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분명 결정론적인 세계의 입장에 맞서 싸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아마 선배가 아카식 레코드의 기록을 그대로 따른 것은 종교적인 이유 뿐만이 아닌 결정론에 대한 패배주의와도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결정론적 세계의 이야기와 맞서서 이를 딛고 기계장치의 신이 되는 것은 SF의 초월에 대한 담론과 닮아 있습니다.
물론 나의 행동이 결정론에 근거되어 있을 뿐이고, 그저 선배의 행위의 인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유로 인하여 나는 그녀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자유의지가 없다고 서술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유지를 이어 미지의 미래에 저항하며 최후에는 기계장치의 신으로 극복 된다는 지점에서 자유의지는 유의미해집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선배의 죽음은 나에게 무엇을 전해주기 위함이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아카식 레코드로 박제된 자신의 미래를 소거하고 미래에 대한 무지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측 불가능한 시점에서야 자유의지가 유의미하게 그려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선배가 광신도라고 선언하는 것은 의미심장 합니다. 미래예지의 역설은 우리가 그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로부터 그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위협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행동들이 하나하나 이뤄진다는 공포 속에서 아카식 레코드와의 단절되기 위한 수단으로 자살을 꾀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 것은 필경 운명을 향한 자살일 것입니다.
그렇게 백지의 미래에 전해진 것은 희망이었습니다. 위의 사유로 인하여 선배는 아마 미래를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선배의 유지로 하여금, 그리고 그녀가 찾아낸 모듈과 자료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는 다시 진행되었고, 또 우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선배를 튼튼한 어깨에 태운 채 나아간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초월하여 미래를 이어나갑니다.
밀리의 스토리와 세계관을 반영하면서도 치밀한 스토리가 일품인 소설이었습니다. 다른 곡들의 파트를 적절하게 따오면서도 엑스칼리버의 스토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그 반증이라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소설 써주신 작가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