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정치가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약파라테스의 국가 (작가: 냉동쌀, 작품정보)
리뷰어: 탁문배, 21년 11월, 조회 70

저는 대단히 눈치가 없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고 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넘겨짚고 그런 거 잘 못합니다마는, 전체적인 내용이나 작품의 분량 등등을 볼 때 리뷰 공모를 하신 뜻이 뭔가 구성적인 비평을 원하시기 보다는 여기 모두 함께 모여 한담이나 즐겨보자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니까 이 어딘가 연기가 자욱한 곳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다같이 그윽하게 빨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작품의 주제는 평가입니다만, 저는 작품을 평가할 생각은 접었습니다. 대신 술장(제 방에는 그런 용도의 가구가 있습니다)에서 오랜 스승, 의학의 어머니 위스키라테스를 데려왔습니다. 간경화와 뇌졸중 등으로 이날 이때까지 의학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의학의 어머니가 맞겠죠.

 

 스포일러 걱정할 시간에 그냥 한 번 읽고 오시는 편이 낫습니다.

 

 고대 그리이스 같지만 그리이스는 아닌 곳에서 소크라테스 비슷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아닌 약파라테스가 제자들과 이상국가최선의 국가를 논하다가 연령을 대체하는 서열 정리 방식으로 정기시험을 쳐야 한다고 주장한 뒤 혼자 뭐가 증명되었다면서 즐거워하는 내용입니다. 소크라테스 비슷하다는 말도 정정해야 할 것 같군요.

 연식이 드러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않겠지만 저는 요즘도 가끔씩 수능 공부를 하는 꿈을 꿉니다. 그 때는 그렇게까지 실감을 못했지만 수험생활이 제게도 정말 심각한 스트레스였나봅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서 보니 수능 성적보다도 대학 간판의 권능은 생각보다 대단하기도, 별 거 없기도 하더군요. 생각보다 그저 그래요.

 앞에서 서열이라는 말을 했는데, , 중요한 것은 시험이 아니라 서열입니다. 평가 방법 자체의 공정성이나 정밀성은 물론 뭐 있긴 있어야하겠지요, 그렇지만 시험 성적 자체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시든 수시든 학교에서 학생의 창의성과 학업수행능력 어쩌구를 평가하기 위해 평가체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기야 하겠지만, 저에게 중등교육과정이란 결국 누가 서울대 갈지를 결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대를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 분은 역대 국회의원 중에 서울대 출신이 몇 명인지 한 번 세어보고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가 괜히 서울공화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리화누스와 자네의 의견이 충돌한다면, 사람들은 자네의 의견을 따르겠지?”

 “, 선생님. 제가 더 지혜로운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줄 세우는 걸 참 좋아합니다. 사실은 줄 세우는 게 아니라 피라미드 세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높으신 분이라는 말처럼 이 줄에는 명백히 고저차가 있거든요. 위에 있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밑에 있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저 학생은 서울대를 나왔으니 똑똑할 뿐 아니라 성실하고 선량하며 지혜로울 것이라는 인식은 얼마나 찾아보기 쉽습니까?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않는 나이가 되면 이제 다니는 직장, 그 직장에서의 직위, 아파트 평수, 타는 자동차 등등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말하기 싫어도 아무튼 말해줍니다.

 누군가가 어떤 부분에서 옳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옳은 사람은 없습니다. 있으면 사람이라고 부르지도 않죠. 그리고 그나마 특정 분야에서 타율(?)이 좋았던 사람도 시간이 갈수록 맛이 가는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한마디로, 그때그때 달라요. 그러나 서열주의는 나보다 서열이 높은 자를 언제나 모든 면에서 우월한 것으로 간주하라고 합니다. 물론 그 비슷한 사고가 필요한 상황이나 조직도 있긴 합니다. 작금 21세기에도 선장 없는 배를 타거나 지휘관 없는 군대에 소속되는 것은 심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항시 거친 바다나 전쟁터는 아닐 겁니다.

 이야기는 매년 승단심사를 통한 나름대로 합리적인 평가체계를 수립하면서 마무리됩니다. 단증체계 그 자체도 상당히 미심쩍긴 하지만, 무슨 시스템을 들고오건 간에 국가통치의 견해차를 조정하는 방안으로 당사자들의 지적 등급을 비교하는 국가는 최선의 국가와 아무 상관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정치야 말로 사실 전문가의 의견을 가장 신봉하기 어려운 분야니까요. 어디 한번 근면하지 않다든가 현명하지 않다든가 부유하지 않다든가 아리아인이 아니라든가 뭐 아무튼 아무 이유나 갖다 붙여서 사람들을 하나 둘씩 정치에서 배제해 보십쇼. 조만간 우렁찬 박수 갈채 속에서 공화국이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최선의 국가가 맞군요. 자네 부모님이 파시스트인가?

 개선해야 하는 것은 평가체계가 아니라 검증의 칼날을 의견 자체가 아닌 의견을 낸 사람에게 들이대는 우리의 습관입니다. 그런데 효율에 심각하게 집착하는 우리의 뇌는 자꾸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느니 하는 쉰소리를 지껄이며 알량한 학력이나 사회계급에 그 평가업무를 도급줍니다. 무분별한 하도급의 결과가 어떤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내년 봄이면 또 대선이군요.

 우리는 늘 대표자가 아닌 우상을 원합니다. 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거하시며 그 영명하신 지혜로 주린 자를 먹이시고 아픈자를 달래시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실 그분이 마땅히 권좌에 오르길 갈망합니다. 그분이 다 해주실 거야라는 이런 생각은 또 우리 당, 우리 지역, 우리 계급, 우리 젠더가 아닌 사람은 쳐부숴야 할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궁합이 잘 맞죠. 그렇습니다. 술 마시면 대개 이런 답 안 나오는 소리만 지껄이다 잠듭니다. 하여간 정치 이야기만한 안주가 없다니까요.

 조만간 술장을 더 채워 놓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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