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파국이다!!!!!!!!! 감상

대상작품: 세계의 에필로그 (작가: 삶이황천길,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21년 11월, 조회 56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끝이 끝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세계가 유한하다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지구 밖을 꿈꾸나 아직까진 지구의 영향권 밖에선 살아갈 수 없는 – 우주로 진출을 하긴 했으니까요. – 인간의 한계 마냥 세계가 유한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도발적입니다. 분명 우주는 한없이 팽창하고 있으며, 우리는 티끌과도 같기에 세상을 모두 알기에는 너무나도 미천합니다. 하지만 미천한 만큼 큰 꿈꿀 수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과학과 상상력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주를 예측하고 하나 하나 밝혀나가고 있습니다.

 

그 끝이 무엇이 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세계의 유한성은 두가지 맥락으로 읽힙니다. 하나는 이 모든게 컴퓨터의 시스템으로 만들어졌기에 당면할 수 밖에 없는 용량상의 문제를 암시하는 복선이라는 측면입니다. 컴퓨터라는 건 결국 저장장치를 가진 기계이기에, 계속 용량이 증가하면 파국을 맞이할 수 밖에 없겠죠. 그 것을 확인사살하듯 실제로 이 소설에서 컴퓨터는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두 번째는 이 유한한 세계가 세상 – 특히 지구의 – 메타포라는 관점입니다. 총 용량 510,100,000km²의 지구 속에 인간은 쌓이고 쌓여 80억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지구의 자원은 빠르게 말라가고 있으며 무언가 조치가 없으면 언젠가 결국 파국에 이를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미지를 미지가 아닌 것으로 전제함으로써 이 소설은 불교 – SF의 영역에 닿습니다.

 

사후세계는 분명 미지의 영역입니다. 이 미지의 세계를 기계장치의 신이 조정하고 있었다는 반전은 유쾌함과 동시에 SF라는 장르는 명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기계의 인간성과, 인간을 넘어선 초월은 SF의 중요한 담론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초월이라는 지점에서 이 소설은 어쩐지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이라는 단편을 떠오르게 합니다.

여기서, 이 시스템 속에서 사후세계의 존재들이 파업을 진행하는 부분은, 인간성의 의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동시에 그 시스템이 결국 기계였다는 점은, 특이점이 와 인간을 초월한 미지의 존재가 된 기계의 초월성을 여실히 간증합니다. 그렇게 초월적인 기계 – 유한한 인간의 도식은 끝내 유쾌하게도 파국이라는 시점으로 이동합니다.

 

그렇습니다. 파국입니다. 피안과 차안의 경계가 무너지고 결국 세계가 망가져 리셋에 이릅니다. 세상이 무너지고 삶과 죽음의 구분은 사라집니다. 그렇게 기계장치의 신이 무너지는 순간 ‘세계’마저 윤회의 영역에 이릅니다.

 

세계 밖의 세계에 이르러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윤회는 인간이 죽어도 그 업()에 따라 육도()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는 불교교리(두산백과)입니다. 그것이 세상이 붕괴되고 무너지는 파국에 이르렀을 때, 세계는 다시금 리셋 됩니다. 그렇게 세계 밖에 세계가 있었고, 이전 세계는 단지 그 세계의 국소적인 부분이라는 점에서 마치 프랙탈 마냥 세계가 분화합니다. 이전의 베르나르의 신에서 책의 세계에서 우리의 세계가 이어지듯, 세계의 에필로그는 이 지점에서 미지의 것은 다시한 번 우리의 눈으로 가시화 됩니다.

파국이 되어서야만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이 대단원이 한단락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미지의 것을 알 수 없는 것과 파국의 영역이 중첩 됩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상상력이 극도로 발휘될 때 이 소설의 매력 역시 여실히 드러납니다.

 

불교적인 색채와 SF의 담론들이 짐짓 평이한 일상(?) 속에 진득하게 녹아있는 점 등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스토리의 흐름이 유려하면서도 캐릭터들의 개성이 잘 살아 있어 더욱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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