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기본에 충실한 좀비물입니다. 리뷰를 쓰는 시점에 전 23회까지 읽었는데, 독자적인 장치나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충분히 몰입감 있는 스토리라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장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작품의 기반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 같죠. 그만큼 전개가 안정적이고, 버릴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분명 기존 좀비물에서 많이 보아온 것들임에도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좀비는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한 괴물은 아닙니다. 특히 시간이 지나 사체가 부패한 좀비는 적당한 무기와 요령이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좀비들이 만만한 상대가 되는 건 아니죠. 상황은 이미 절망적이고, 그 안에서 생존자들이 갖는 선택지의 폭이 아주 조금 늘어났을 뿐입니다. 이 차이는 꽤 중요합니다. 인물들이 희망을 갖고 힘을 합쳐서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해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니까요.
이야기는 계곡에서 발견된 붉은색 이끼와 한 남성의 시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좀비 바이러스의 발생 원인에 맞추어졌던 초점은 점차 주인공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이들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양식을 구하기 위해 팀을 꾸려 좀비들의 세계로 발을 내딛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름을 가진 인물이 아주 많이 등장하는데, 비중 있는 몇몇을 제외하면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습니다. 많은 인물들이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또 다른 인물이 채워주죠. 이야기 속에서 생존자들의 모임은 늘 일정한 규모와 형태를 유지합니다. 주요 인물 간 관계도 어렵지 않게 파악되고요. 이렇게 인물들을 균형감 있게 배치하면서 서사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이 이야기가 좀비물로서 갖는 뚜렷한 장점 중 하나입니다. 비중이 크지 않은 인물의 죽음도 결코 사소하지 않게 묘사함으로써 디스토피아적인 뉘앙스를 성공적으로 연출해내죠.
한편 인물들이 시종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는 좀비뿐만이 아닙니다. 질서가 무너진 세계에서 어떤 인간들은 괴물보다도 더 잔인합니다. 가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 ‘나희’는 때마다 인상 깊게 활약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성공적으로 각인시킵니다. 나희는 좀비가 인간을 구별하여 인식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직접 좀비와 한 방에 갇혀 실험을 할 정도로 냉철하고 강인한 인물입니다. 동시에 낯선 생존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을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영리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애증과 연민을 품고 있는 가족 앞에선 감정적으로 변하는 평범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이렇듯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에 힘입어 중반 이후 생존자 그룹의 무게중심은 자연스럽게 나희에게 옮겨 오게 됩니다. 이후 이야기도 나희, 나연 자매를 축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싶은데 또 모르죠. 사실상 예측하는 게 큰 의미가 없을 만큼 구도 자체가 역동적입니다. 이 또한 이 작품이 갖는 큰 매력이지요.
이후에 어떤 임팩트가 있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생필품은 떨어져 가고, 보급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생존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어 있고, 바깥은 좀비와 양아치들이 우글거리는 아수라장이죠. 이제 인물들은 고립된 도시를 벗어나 새로운 피난처를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익숙하게 보아온 설정들을 따라 전개된 이야기가 앞으로 새로운 개성을 선보이는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지, 여러 면에서 많은 기대를 하게 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