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연쇄살인범을 쫓는 프로파일러의 이야기.
담백한 작품 소개에 이끌려 읽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허름한 동네에 있는 허름한 밥집에서 시작된다. 저녁 무렵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낡은 장소라는 공간적 배경은 영진의 냉소적인 독백에 의해 하나로 묶여져 더욱 음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전술이고 전략이고 철학이고 없었다. 저들이 하는 짓은 그 개판 오 분 전의 축구와 비슷하다. 공을 던져 놓고 사람들을 달려나가게 하는 것뿐이다. 웃긴 건, 공을 던진 이들이 동시에 본인들도 그 게임에 심취해 공을 향해 달려간다는 점이다.
한밤중에 시골 산간 마을을 지나는 낡은 버스를 타고 인적 없는 산으로 향하는 영진의 행적은 그런 분위기를 더더욱 고조시켰다. 그래서 죽 이런 분위기로 작품이 진행되는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말하는 너구리’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누가 깊은 산속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 귀여운 너구리를 만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런데 너구리한테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 같다. 번개를 불러오기도 하고, 간혹 툭툭 던지는 의미심장한 말을 보면 너구리에게는 분명히 뭔가가 있다.
“진실을 말하지 않은 건 순수함에 때가 묻었기 때문이지! 그러니 자네는! 동심이 없거나 모자란 녀석일세! 세상의 쓴 물에 닳을 대로 닳아버린! 아주 불쌍한 놈이란 말이야!”
라는 말을 하는 너구리가 평범할 리가 없지 않은가?
너구리와 영진과는 별개로(진짜 별개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파일러 윤성의 이야기도 진행된다. ‘서울 동부 연쇄살인 사건’과 ‘경기북부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며 공통점과 의문점을 차근차근히 정리해 나간다.
중간중간에 시점이 확확 바뀌어 처음엔 헷갈렸지만, 가닥을 잡고 나니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현재로선 너구리와 영진의 이야기, 윤성의 이야기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뉘어 전개되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들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언제쯤 나타날까?
영진이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하는 범인이고 그 앞에 나타난 너구리는 영진을 도와주러 나타난 악마인지 아니면 처벌을 내리러 나타난 천사인지 모를 생물이라고도 생각해보았으나 너무 뻔한 생각인 것 같아 도중에 그만두었다.
말하는 너구리는 자칫하면 잔뜩 우울하고 무겁게 진행될 수 있는 수사물의 분위기를 보다 가볍게, 보다 몽환적으로 만들어주는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과 동시에 무엇인가 실마리를 쥐고 있는 키포인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너구리가 뒤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