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허무주의 감상

대상작품: 사랑의 형태 (작가: 삶이황천길, 작품정보)
리뷰어: DALI, 6일전, 조회 42

독자가 주인공에게 동기화되기까지 1분도 안 걸리는 매우 강렬한 도입부를 지닌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직접 서술하는 형식으로 묘사된 상황은 한국인 독자에게 익숙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로서도 매력적이에요. 시작과 동시에 몰입하게 되죠. 인상적이었던 한 문단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삶에서 부모자식 인연이 끊어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허무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동에서 인천 남동공단까지 4년을 오가며 모은 월급, 부모님이 관리해준다고 하기에 통장을 맡겼는데 그것이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과 기숙사비, 토익학원비, 용돈으로 쓰였다는 것을 일을 그만두고서야 알아버린 것이다. 인터넷에 구구절절 눈물 뚝뚝 흘리면서 글을 썼는데, 바보 같은 짓이라는 다섯 글자를 15줄로 늘여 쓴 냉소적인 댓글 보고 정신을 차렸다.

 

한국에서 30년 이상 평범하게 살아온 ―특히 여성― 독자라면 이런 도입부를 읽고 다음 내용을 보지 않기는 어렵겠죠. 주인공은 아마도 살면서 가족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그 피해는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삶에 고정적으로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에 가까웠을 겁니다. 주인공은 장녀이고,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한국식 타산의 익숙한 희생양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단편을 끝까지 읽을 이유는 충분하죠.

 

전 도입부에 간결하면서도 확실하게 판을 벌려놓고 들어가는 이런 이야기를 특히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이 리뷰는 그런 호감을 바탕에 깔고 쓰였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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