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역병이 창궐한다면? 역병으로 내 일상이 위협당한다면?
예전이라면 모르겠으나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으로선 할 말이 무궁무진하다.
기령도 마찬가지로 역병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그나마 기령의 마을로는 역병이 번지지 않아 한숨 돌리기는 했지만.
어느 날 기령은 이장에게 상납물로 바칠 짐승을 잡으러 갔다가 역귀와 맞닥뜨린다. 역귀가 역병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것, 역귀는 실체가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과는 좀 사정이 나아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역귀만 죽이면 역병이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그것은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역귀는 역병을 퍼뜨리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마을을 덮칠 역병을 혼자 다 뒤집어쓴 희생양이었던 것. 마을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역귀가 될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이장과 수족노릇을 하는 경비대를 보며 입맛이 썼다. 액받이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거기에 희생되는 사람들의 의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효율적인 것은 맞지만 절대 도덕적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장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역병이 마을을 덮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나와 내 가족이 언제 희생될 지도 모르는데?
약자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다수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공평하게 모두가 병에 걸려 죽어갈 것인지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나로서는 자신 있게 이 방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자가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극한 상황에서까지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장에 이입하며 읽느냐, 아니면 마을 주민에게 이입하며 읽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감상이 갈릴 것이라 짐작된다. 혹은 본인이 평소에 지향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에 따라 갈릴 수도 있을 것이고. 공동의 이익과 도덕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마땅한지는 예나 지금이나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던가?
기령은 경비대에 들어가 역귀를 만드는 데 일조하면서도 고민에 휩싸인다. 그러나 기령은 어느 새 자신의 결심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경비대 대장이 되는 것을 넘어 마을 이장 자리까지 노린다. 일신의 편안함이 가져다 주는 유혹을 거부하고 원래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기령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이를 탐탁찮아하던 이장 아들은 계략을 꾸며 기령과 그를 따르는 경비대원들까지도 역귀로 만들어버린다. 꿈이 좌절된 기령은 복수심에 불타 자신이 살던, 자신이 지키고 싶어하던 마을을 덮친다.
이를 보며 동정심과 동시에 자업자득, 혹은 업보구나 싶었다. 과거에 희생되었던 역귀들이 이런 상황을 보았더라면 손뼉을 치고 좋아했을 수도 있겠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더니 결국 너도 나와 같은 꼴이 되었구나.
결국 기령은 자신의 복수뿐만 아니라 역귀들의 복수를 대행한 셈이라 할 수 있겠다.
기령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지 않았다면 비밀을 알아챈 죄 아닌 죄로 자신이 역귀가 될 형편이었으니까.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팔아넘긴다며 누군가는 비난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같은 상황에 처하면 기령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나는 약한 사람이고, 내 이익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처럼 쉽게 도덕적인 행동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기령처럼 살고 싶지도 않다. 남을 희생시켜가며 살아간다면 매일 밤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인지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