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제인 오스틴 풍의 깜찍한 로맨스 소설과, 애거사 크리스티 풍의 범죄 스릴러 소설과, 새라 워터스 풍의 뜨끈하면서도 가슴 저릿한 퀴어 소설을 읽고 싶었던 여름. 책도둑 작가의 <단풍나무 저택의 유산>을 읽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59화에 이르는 긴 이야기를 단숨에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어떤 우연은 필연보다 실현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내심 그걸 바랐다면, 끝내 솔직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연인들처럼 말이다.
레티는 돈이 필요한 여자였다. 평범한 서민층 가정의 맏딸인 레티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후 장녀로서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연줄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닌 하녀 일은 레티에게 적격이었다. 게다가 새로 가게 된 메리요트 대저택은 외딴 시골에 있는 것만 빼면 모든 조건이 좋았다. 급료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하녀에게 독방을 주었다. 그런데 왜일까. 평소보다 힘차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레티에게 메리요트 대저택의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냉랭했다. 아직 짐을 풀기도 전인데 일을 하라고 하지 않나, 하녀복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나, 전임자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쉬쉬 하지 않나,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런데도 레티는 도망칠 수 없었다. 남편을 잃고 혼자서 어린 자식들을 키우는 어머니와 여우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동생들을 생각하면 약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참고 견뎠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엘리자벳은 사랑이 필요한 여자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부잣집 외동딸, 대저택의 상속녀로 불렸던 엘리자벳은 자라는 동안 내내 외로웠다. 유일한 식구인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자신에게 무관심했다.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중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낙마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전보다 더 철저히 자신을 외면했다. 이제 정말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 하녀인 케이트가 다가왔다. 그 전까지 엘리자벳은 사랑이 남녀 간에만 피어날 수 있는 감정인 줄 알았다. 언젠가 구혼자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그중 한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케이트를 만나 동성 간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피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케이트가 대저택을 떠난 후에는 이제 다신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하녀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케이트의 옷을 입고 나타나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하는데, 그게 전혀 밉지 않고 자꾸만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참지 않았다. 레티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때까지.
돈이 필요한 하녀와 사랑이 필요한 상속녀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 드물지 않다. 상속녀의 재산을 탐내는 사람들의 음모와 상속녀의 사랑을 받게 된 하녀에 대한 질투도 어떻게 보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전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끝까지 만족스럽게 읽은 건, 신분이 다른 두 여자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하나로 결합되는 이야기라서만이 아니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집을 매개로,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보통 집은 여성에 비유되지만(‘집사람’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여성이 집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남성의 재산은 아들에게만 상속되었다.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경우에는 사위에게 상속되었다. 즉, 여성은 아버지, 남편, 아들이 있는 경우에만 집에 ‘속할’ 수 있었다. 로즈미나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것도, 엘리자벳이 관심 없는 남자들과 억지로 만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레티가 나타나 엘리자벳의 마음을 사로잡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솔직해지면서 이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처음에 엘리자벳은 레티와의 연애가 남편감이 정해지면 사라질 ‘꿈의 종말’ 같은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엘리자벳은 예정된 장래가 아닌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남편이 있어야 가질 수 있는 집을 떠나 자신과 레티를 위해 스스로 집을 만들기로 한다.
엘리자벳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로즈미나의 공이 크다. 엘리자벳처럼 귀족의 딸로 태어난 로즈미나는 가문을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해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가슴 떨리는 사랑을 했는데, 그 사랑을 지키려면 집을 떠나야 했고 이 집보다 좋은 집에서 살 수는 없을 거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사랑보다 집을 택한 현실적인 여자는 끝까지 현실적이었다. 단, 이번에는 사랑과 집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집 모두를 지키는 방식으로. 이런 식의 사고방식 혹은 삶의 방향은 ‘모녀’지간인 로즈미나와 엘리자벳이 공유하는 ‘유산’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이 이야기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유산이 상속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딸로 유산이 상속되는 이야기다. 게다가 그 유산은 집과 재산이라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랑과 연대라는 정신적인 것도 포함한다. 이런 유산 상속 이야기라면 지겨워하지 않고 얼마든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이 작품은 과거에도 지금도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동성 커플이 사랑할 자리가 없어서 어딘가로 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둘이 함께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이런 자리, 이런 집이 누구에게나 보편적 권리로 주어지는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