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시 지원을 위해서 다녔던 논술 학원과 레포트를 한 학기에 몇 부씩 제출해야 했던 대학교에서 수없이 많이 들었던 말은 ‘하고 싶은 얘기는 두괄식으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문장이었다. 그러니 감상은 한 마디로 요약하고자 한다.
“『모이라이의 총아』는 ‘이야기를 즐기는 그대’를 위한 글이다.”
잠깐, 당장 기업에 지원하려고 해도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자기 성장의 스토리텔링을 요구하는데, 그러면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은 절대다수가 아닌가? 지금 이 글이 그냥 아무나 와서 읽을 수 있는 페이지 터너라고 설득하려는 건가? 그렇게 추천해서 읽었던 작품들 이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던 가? 이 글을 읽는 독자는 현재 감상문을 쓰는 글쟁이가 저런 종류의 약장수인지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도 다 똑같은 독자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야기를 읽어내며 익숙한 전형에 안정감과 대리만족을 느끼는 독자는 많지만, 전형을 파악하고 이야기의 구조변형을 주도적으로 ‘즐기는’ 독자는 흔치 않다. 즉, 안타깝게도 파이드파이퍼 작가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모두가 가볍게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직관적이고 단선적인 구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모이라이의 총아는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퍼즐이며, 그 가치를 알아보는 독자에게는 충분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글이다.
그렇다면 왜 이 글이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퍼즐’이라고 단정하는가? 그걸 알아보기 위해서는 『모이라이의 총아』가 필연적으로 수반하고 있는 세 가지 ‘양날의 칼’을 읽어내야 한다.
먼저, 『모이라이의 총아』는 그 자신이 몸담은 로맨스판타지라는 장르의 문법을 전면적으로 굴절한 작품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여성향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신분적으로 비천하고 나이 든 남성을 내세웠으며, 전생의 아내이자 유일한 사랑(?)이었던 필로메아의 마음을 쟁취하기 위한 여정을 찬찬히 풀어놓는다. 얼핏 들으면 다시 태어나면 너랑 안 살고 다른 놈이랑 산다고 말하는 우리네 현실과 확실히 다른, 여성향 판타지에서 흔히 그려지는 이상적인 순애보 남성이지만, 스토리텔링의 방향은 주 독자의 욕망을 여성인 주인공을 통해 상대적으로 직접 표현하는 로맨스판타지의 문법에서 굴절되어있다. 이렇게 변형한 상을 읽으면서도 본질을 잡아낼 수 있는 건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상이 굴절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찾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어, 『모이라이의 총아』에서 보이는 변형은 장르적 문법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글 속 캐릭터와 독자의 관계이다. 보편적으로 작품 밖에서 외부적 관찰자 시점으로 모든 걸 내려다보는 독자는 작품 속 캐릭터보다 많은 정보 값을 쥐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독자는 캐릭터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심리적 포만감 혹은 안정감을 얻게 되는데, 『모이라이의 총아』는 이러한 예상을 보기 좋게 전복한다. 이 작품은 단독작이 아니라, 작가의 전작 『아스티아낙스의 어머니』의 연장선에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이라이의 총아』는 작가의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해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독자적인 자생력을 지닌 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아스티아낙스의 어머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종의 AU(Another Universe)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전작을 읽지 않아 아무런 정보 값이 없는 독자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게 된다.
생략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전작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읽어가면서 유추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일반적으로 일과 중 머리를 식히려고 웹소설을 읽는 일반 독자에게는 부담이 되는 선택지다. 그러나 읽기와 이야기 분석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꺼이 도전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두 번째 요소는 작중에서 진행되는 아슈라드-필로메아 사이의 로맨스적 텐션에 의한 재미뿐만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워놓은 빈 곳을 추리하는 데에서 오는 재미를 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요소는 무엇일까? 세 번째 요소는 작품 제목인 『모이라이의 총아』로 대표될 수 있다. 제목이 뭐가 어째서, 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파이드파이퍼 작가가 고른 제목은 바로 작품의 정수를 담고 있다. 위키백과의 정의를 빌리자면, 모이라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명의 “운명의 여신”으로, 이들의 이름은 ‘각자가 받은 몫’이란 뜻의 모이라 (μοῖρα)가 신격화된 이름이다. 즉, 제목의 뜻은 ‘운명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혹자는 왜 뜬금없이 작품의 제목을 설명하고 있느냐, 물을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질문을 한 번 던져보자.
제목을 읽었을 때, 바로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는가?
고대 그리스 신화를 모르거나 한자어에 약한 사람이라면, 작품 제목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모르는 단어를 봤을 때, ‘뭔 소리야’, ‘어려워 보여’하고 뒤로 가기를 누르거나 각주를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면 『모이라이의 총아』는 당신을 위한 작품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일전에 파이드파이퍼 작가는 『인생 2회차, 전 마누라의 첫사랑이 되고파』라는 다른 제목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단 그 제목이 글과 어울리는 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 마음속의 논의로 넘겨두도록 하자.
하지만 동시에 이 글이 매력적인 이유도 이 부분에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파이드파이퍼 작가는 고전처럼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활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가라는 점이다. 그러한 모습은 작품 내 비잔틴 제국에서 따온 ‘켄타르초스’ 같은 관직과 칭호 체계나 사회상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그 외에도 『모이라이의 총아』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요소를 빌려 나름의 정합성이 잘 짜인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작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자칫 어려운 주제로 가거나, ‘고증’에 함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할 위험도 있으나 이 작품은 그러한 위기를 가볍게 비웃고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 뼈대는 견고하지만, 이야기는 가볍고 발랄하다. 빈 곳은 있으나 그건 마저 칠하지 못해 희게 삐져나온 캔버스의 귀퉁이가 아니라, 직접 칠할 수 있도록 남겨둔 곳이다.
그렇기에 『모이라이의 총아』는 이야기를 이미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그대에게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덧붙이자면, 미친놈은 끝까지 미친놈이어야 한다, 성년-미성년을 포함한 나이차 로맨스가 불편하다! 라는 분은 스킵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