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 저는 이런 이야기가 취향입니다 ★밤
그리고 스포일러도 한가득 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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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영원을 약속받은 남자가 있다. 대부분의 생명들이 단 하나만으로도, 그 박동하는 움직임이 종종 벅찰 때가 있는 심장을, 무려 네 개나 가진 남자다. 자, 신화나 전설들을 한 번 들춰볼까? 곳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슬그머니 드러내곤 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종종 평범한 것들 사이에서 숨길 수 없이 드러나곤 하는 희귀함을 탐낸다. 그래, 심장이 네 개인 사람의 심장 같은 것들 말이다. 악마가 그 심장에 관심을 두었다.
어떠니, 아이야. 영원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니?
아무 것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고, 영원을 약속받고. 심장 하나에, 거래 하나. 공평하기가 고대 왕 뺨치는 악마다. 술수를 부리지도 못하는 정직한 악마였다, 게다가 이런 미식가라니 – 아, 시작부터 악마의 패배가 예정되었다. 악마는, 자신의 끝을 오만하게도 짐작하지 못했다. 악마에게서 영원을 선물 받고서 남자가 천년을 살아 전설이 되는 동안에도.
자, 여기, 짧은 생애를 살아갈 여자가 있다. 아름다움은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저 절망일 뿐이다. 붉은 금발은 그저 난도질당할 것이다. 호수 같은 눈동자는 그저 퍼렇게 식어버릴 것이다. 귀족의 후처로나 팔려나가 음지에서 생애를 마칠 거라 입들에 달큰히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여자의 아름다움이 가져올 수 있는 힘은 예상보다 큰 것이었다. 여자는 황제의 여자가 되었지만, 본처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정부의 얘기란 어느 세계 어느 시간대에서라도 흔한 일이리라. 아름다움은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저 절망일 뿐이라니까? 여자는 비참한 꼴로 살해당했다. 그래, 황제의 여자라도 그건 황제의 힘이지 그녀의 힘이 아닌 거다. 그녀가 가질 수도 없는 힘일 뿐이다.
시간축을 뒤틀어 영원이 찰나에게 손을 뻗었다.
엉망이네요, 엉망이에요. 어찌 남의 여자에게 반하고 그러세요? 다른 이의 여자예요.
사랑은 세계를 구하는 거야. 사랑 밖에 없는 거지. 백년이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사람이 사람에게 손을 뻗는 데에, 그저 무슨 이유가 필요해? 죽은 여자야.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남자의 여자지 – 그럼,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잖아? 먼저 손을 뻗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을.
다만 마음까지 가져올 수는 없으니까, 그저 미움을 사더라도, 일단 안전하게라도,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딱 1년. 그 후에, 나는 당신을 죽일 거야. 자. 나와 결혼해주지 않을래?
여자를 세상에게서 꼭꼭 숨겼다. 그가 뒤틀었던 운명에게서 꼭꼭 숨겼다. 황제에게서도, 그녀의 얼굴을 난도질하고 목을 잘라 몸뚱아리를 거리에 집어던질 황후에게서도, 그 외 입방아에 그녀를 오르내릴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도.
그리고 그녀가 원래 죽었던 그 날,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그 날까지 숨길 수밖에 없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남자는 꼭꼭 잘 숨겨냈다.
그렇게 돌린 시간으로부터 딱 1년, 약속된 1년이 지나, 찰나의 삶이 확실히 시간을 보장받자 영원이 “약속을 지켜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악마에게 심장을 주었겠지?
악마가 낼름낼름 신나하며 천년을 기다린 심장을 집어삼켰는데, 그 심장은, 어이쿠야, 가짜였다네. 가짜였어요. 누구의 심장인지 모르겠지만 악마가 미식가라 알아차리고야 말았도다. 가짜로구나! 시체조차 어디 숨은 가짜! 악마는 화를 냈답니다, 화가 애먼 화네요. 악마는 영원이 시간을 뒤바꾼 찰나에게, 대신 대가를 받아내기로 했다. 자신이 속았던 대가를.
여자가 약속받아 살게 되었지만은 운명에는 없었던 시간을 사는 동안, 악마는 그녀의 구혼자가 되었다. 절실함을 표방하며. 절실하다면 절실할 것이다. 심장, 심장, 나를 속였어-! 그리고 결국 목줄기를 잡고 으르렁대는 단도를 들이밀며.
그래봤자 익히 했던 예상대로 악마가 죽어. 입이 짧으면 오래 살지 못하는 법이다. 복수심을 잊지 못해도 오래 살지 못하는 법이다. 오로지 자신을 죽이는 것은 자신인 법인데, 시간을 돌리고 유한을 무한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서도 그놈의 심장의 맛 하나 때문에,
너는,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세례 받지 않은 자, 악마와 거래한 자, 세상 모든 세례 받은 남자는 나를 죽일 수 없어!
하지만 남자가 못 죽인다고 외쳐봤자 여자가 있다. 엄마가 그런 얘기 해주시지 않았어? 음식 가리지 말란 말이야. 자기가 살린 이미 죽어있어야 할 여자한테 죽다니.
자, 영원이 찰나에게 끌렸어.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남에게서 찾는 법이거든. 그리고 그것이 희귀하고 독특할수록, 더더욱 빠져들어.
찰나가 영원에게 생을 빚졌어. 이 빚을 어떻게 갚지요? 그저, 사랑만 하면 돼. 사랑, 사랑은 세계를 구하는 법이거든.
—하지만 싸늘한 이야기 하나가 있지. 뒷맛까지 싸늘한 이야기 하나야.
그래서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어요?
여자의 삶은 짧아. 찰나가 아니라도 끝이 있겠지. 남자의 삶은 길어. 어디가 끝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죽어 사라진 악마도 대답해줄 수 없어. 여자의 촛불이 먼저 꺼졌어. 남자가 우울하게 쳐다보았겠지. 그리고, 으스스하게도, 남자는 기다렸어.
클로엘. 내게 돌아온 것을 환영해.
집에 가고 싶어요.
여기가 집이 될 거야.
어째서?
나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찰나는 영원에게 빚을 졌어. 악마를 죽인 것이 빚을 갚는 것이었을까? 아니, 이미 그 남자의 심장은 하나 뿐이거든. 심장 두 개의 빚은 어떻게 갚으면 될까?
그녀에게 더 이상 선택권은 없는 거야. 클로엘, 다시 태어나서 내게 와. 클로엘, 너는. 클로엘, 클로엘. 몇 번을 죽고,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그렇게. 클로엘, 클로엘. 너는 영원히.
그녀는 영원히 그의 것이야.
죽음으로도 달아날 수 없지.
그녀를 감금하고,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고도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거라 여긴 그 오만함과 함께, 그녀를 함부로 살리고 당연히 그 삶에 감사할 거라 여긴 그 잔인함과 함께,
심지어 죽지도 않는 그 남자에게서 말이야.
언제까지라도 어디까지라도 쫓아오겠지.
달아날 수가 없다니까?
뒷맛까지 싸늘한 이야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