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의 경성, ‘조동 신문’ 산하 월간지 ‘현경’이라는 잡지부의 시다로 일하는 ‘오 서화’의 이야기입니다. 잡지에서 인기가 많은 이야기는 주로 괴력난신이지만, 엘리트 신문기자를 꿈꾸는 서화는 그런 잡설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물론 서화의 이런 태도는 후반부에 바뀌게 되지요. 이 이야기 자체가 한 편의 괴력난신이기도 한데, 주인공이 그걸 끝까지 부정한다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이야기는 주인공 서화가 진정한 기자―또는 작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서화는 선배 기자 ‘길선’을 대신하여 조동 신문의 사장 ‘정 아진’을 만납니다. 아진은 귀신을 부려 남편과 시아버지를 잡아먹고 집안의 재산을 가로챘다는 전근대적인 소문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가장 확실한 매력을 선보이는 캐릭터이기도 하지요. 아진은 자신을 둘러싼 추잡한 소문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 일이란 바로 살인사건 수사입니다. 아진은 수사를 위해 신문사에 사람을 보내달라 요청했고, 그래서 서화가 오게 된 것이죠.
이야기는 두 사람의 만남으로부터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경성에서는 수상한 시신 유기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야심한 시각을 틈타 유기되었을 시신들은 대부분 아편이나 모루히네(모르핀) 중독으로 보여 행려사망자로 처리되었죠. 경성 외곽에는 아편중독자들의 소굴이 있거든요. 하지만 아진은 그 사망자들 사이에 분명 살해된 시신이 섞여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런 아진을 보며 서화는 놀라움과 꺼림칙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서화는 스스로 합리적 신여성이라 자부하면서도 아진이 귀신을 부린다는 소문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거든요. 서화의 혼란스러운 심경은 이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시리즈로 발전할 잠재력이 충분한 이야기입니다. 일단 설정 자체가 재미있고, 인물들의 매력도 아직 다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수사팀의 리더 아진, 숨은 조력자 ‘박 영’ 기자, 과묵한 수행비서 ‘찬’, 단역처럼 등장해서 결말부에 결정적 역할을 해내는 ‘연실’, 심지어 얄미운 선배 기자 길선까지도 특유의 지질한 매력으로 인물 간 합을 빛내줄 수 있을 듯합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장르물인데,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케 하는 음습한 괴물과 한국 민담 속 익숙한 귀신의 모티브가 같이 등장하거든요. 어떤 독자들은 거의 버튼을 눌린 것 같은 자극을 받게 되겠죠. 독자가 ‘경성기담’이라는 타이틀에 기대하는 분위기를 잘 살린 것도 커다란 장점입니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각 장면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작품 스스로 공략해야 할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죠.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서화의 역할이 좀 더 분명해지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서화의 핵심적인 역할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 즉 작가나 언론인의 역할이에요. 기자가 언론인의 역할에 충실한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고,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진이 꼭 처음부터 서화를 데리고 다닐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어쩌면 그게 주인공으로서 서화를 더 돋보이게 하는 장치일까요. 아직까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