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군가에게 원망 한번 듣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의가 아니었더라도 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남에게 상처가 된 적이 다들 한번은 있을 테니까.
철공소 주인 조한곤은 그런 말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다.
“클래식 음악을 하려면 어려서부터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라고 말한 송강훈 교수 부부나
“악마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며, 외형상으로 악마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전과자들, 특히 살인자의 눈빛을 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라고 말한 고태균 의학박사는 자기도 모르게 조한곤의 원한을 사게 된다. 아버지가 살인죄를 저질러 감옥에 갔고, 가세가 넉넉하지 못한 탓에 성악을 전공할 수 없었던 배경을 가진 사이코패스의 원한을 사 타겟이 될 줄 알았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겠지만 누가 그런 것까지 상상하면서 말하겠어.
조한곤은 그들을 처리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짠다. 그 와중에 태연하게 동물들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잔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죄를 덮어씌울 다른 사람을 미리 물색해놓고 밑작업을 하는 모습이나 귀여워하던 강아지에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전기충격기를 들이대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사이코패스도 이런 사이코패스가 없다. 거기다 아들이 무슨 짓을 하든 늘상 웃으며 아들의 편이 되어주는 조한곤의 어머니도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딘가 제정신이 아닌 모자가 착실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가만히 상상해보노라면 소름이 쫙 끼친다.
작중에서 조한곤은 자신에게 다른 목적이 있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이유? 이유는 없어. 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람을 잘 죽일 수 있을까, 시험해 보고 싶었을 뿐. 이를테면 워밍업이었지.”
직접적인 타겟은 따로 있고, 그걸 처리하기 이전에 워밍업 용도로 송강훈 교수와 고태훈 의학박사를 골랐다는 말은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조한곤의 열등감이 깔려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 사람들을 겨냥할 필요가 없다. 근처 마을에 타겟으로 삼을 수 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조한곤은 인터넷 기사의 댓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입을 찢어달라 해서 송강훈 교수의 입을 찢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고생했기에 고태훈 의학박사는 입을 찢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벌을 주기로 한다. 여기서 그가 갖고 있는 공명심, 영웅심, 과시욕을 어렴풋이나마 읽어낼 수 있다.
‘너희들의 요구를 내가 들어주었다, 그렇지만 날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보태어, 조한곤이 인지를 하든 못하든 그가 갖고 있는 열등감 또한 기저에 깔려있었다고 본다. 가난해서 성악을 배울 수 없었던 것이나 아버지가 살인죄를 저질러 감옥에 갔던 것이나 모두 조한곤의 마음 속에 앙금으로 남은 일이다. 그걸 정면으로 건드리는 발언을 했으니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연습도 할 겸, 자신의 울분도 풀 겸 해서 겸사겸사 피해자를 골랐겠지.
물론 나의 추측일 뿐이다. 조한곤의 진정한 속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내 추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헛다리 짚은 셈이 되어 좀 민망하겠지만.
조한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착실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살인을 저지르는 동안 경찰도 손놓고만 있지는 않는다. 인력을 총동원해 전력수사에 나서기는 하는데, 바로 조한곤이 검거되면 이야기가 재미가 없잖아? 덕택에 배성욱 기자가 뜻하지 않게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조한곤의 철공소에 있던 케이블타이에 관심만 가지지 않았어도 좀 더 오래 등장했을텐데. 계획에 없는 살인을 한 조한곤은 예전부터 가짜 범인을 내세울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변기욱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
경찰은 조한곤이 뿌린 미끼에 낚여 그의 의도대로 변기욱을 체포하지만, 형사들도 바보는 아니니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것이다. 단지 그걸 얼마나 빨리 알아채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빨리 알아채고 배성욱 기자의 다잉 메세지를 해독한다면 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조한곤을 체포할 수 있을 것이고, 늦게 알아챈다면 조한곤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유유히 포위망을 빠져나갈 것이다.
시간이 누구 편을 들어줄 지는 이야기의 끝까지 가 봐야 알 수 있겠지? 조한곤의 진짜 타겟이 누구인지 짐작은 되지만, 왜 그 사람을 타겟으로 삼았는지 모든 것이 밝혀질 그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린다.
사건 구성도 치밀하고, 전개도 늘어짐 없이 스피디하게 진행되어서 읽는 동안 무척이나 재밌었다. 거기다 담백한 필력이 소설 몰입도를 극대화시키고 있으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지.
이번 여름에 함께 할 추리소설을 찾는다면 망설임없이 <옛날 철공소>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