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게 편집된 사랑과 집념의 드라마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피그말리온 살인사건 (작가: 주홍색 연구, 작품정보)
리뷰어: DALI, 21년 6월, 조회 145

제목 그대로 피그말리온 설화를 모티프로 하는 미스터리입니다. 피그말리온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 섬의 조각가죠. 그가 갈라테이아를 창조해낸 동력은 동시대 여성에 대한 극심한 혐오였고요. 「피그말리온 살인사건」에서는 그 혐오의 수위가 한 층 더 높아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이 이야기에서 피그말리온에 해당하는 인물이 완벽한 여성상을 구현하기 위해 택하는 방법은 ‘살인’이니까요. 갈라테이아에 해당하는 여성 캐릭터 또한 도구적으로만 기능하고요.  작품이 택한 구도에서 그건 그냥 기본값입니다. 작품 외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우려할 만한 요소는 딱히 없어 보여요.

 

사실 소설 속 살인마의 엽기적인 방식은 피그말리온보다는 프랑켄슈타인에 가깝습니다. 피그말리온의 모티프가 메인에 배치된 건 살인마가 미치광이 과학자보다 천재 예술가의 스테레오타입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밖에 인공 피조물에 생명이 깃드는―또는 인물이 그렇다고 느끼는― 순간의 경외감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을 테고요.

 

이야기 속에서 ‘피그말리온 살인사건’이라는 명명은 아마도 언론이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붙인 헤드라인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짐작하는 게 자연스럽겠죠. 그만큼 이름이 주는 임팩트가 강렬하고 함축적입니다. 사건이나 서사의 프레임을 짜는 데 있어서 이름은 정말 중요하잖아요. ‘프랑켄슈타인 살인사건’이라고 했다면 뉘앙스가 많이 달랐을 거고 아무래도  밋밋해졌겠죠.

 

 

끝으로 테마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해보면, 이 작품의 핵심 테마는 기괴하게 편집된 사랑과 집념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요. 살인마는 신화 속 피그말리온처럼 완전무결한 사랑의 체험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순결함에 대한 집착은 곧잘 폭력을 동반하죠.  이야기는  폭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결과물입니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요소를 남김없이 소거하려는 노력이 결국 살인 행위로 귀결되는 겁니다. 그리고  살인 행위는 또다시, 이데아의 형태로 존재하는 미를 이 땅에 불러오는 예술가의 사명으로 정당화됩니다. 위험한 공식이죠. 때문에 아무리 픽션이라도 이런 소재를 다룰 때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동원 가능한 수단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됩니다. 결말의 반전은 작가가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하고 있는지를 암시하며 여운을 남기죠. 여러모로 좋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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