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인 듯 악마같지 않은 너~!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마음의 양식 (작가: BornWriter,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7년 5월, 조회 65

악마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무슨 소원을 제일 먼저 들어달라고 해볼까. 악마니까 그 대가로 영혼을 팔라고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주어도 상관없을 만큼 절박한 소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남겨진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중요한 소원이라도 영혼과 바꾸면서까지 해야 한다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냐고. 그러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기상천외한 단편집을 만난 적이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자젤> 에 등장하는 악마는 아무런 대가 없이 인간들의 작은 소원을 들어준다. 단 너무 규모가 큰 소원은 안되고, 대부분 한시적으로만 작용하는 짧은 소원들이지만. 대신에 악마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놈의 악마라는 놈이 악랄하기는커녕 어딘가 어수룩하고, 잘난 척 큰소리 처 놓고도 뭔가 실수를 하곤 하는 인간미(?)를 폴폴 풍기는 게 아닌가. 더 이상한 건 분명히 소원의 주인공이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 결국에는 그것이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이다. 악마의 원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게 풍자와 독설,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었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자젤 만큼이나 궁금한 악마 캐릭터가 바로 이 작품에 등장한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이 짧은 단편을 후루룩 다 읽어내려가고 먼저 든 생각은 “뭐 이런 깜찍한 이야기가 다 있나” 였다. 하핫. 악마와 거래를 하려고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내준다는 플롯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이 있어 왔다.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복수를 해달라는 소년에게 물질적인 대가가 아니라 영혼을 대가로 달라고 하는 악마까지는 뭐 비슷한 설정이다. 그런데 영혼, 까짓거 쓰셔도 좋아요. 라고 흔쾌히 말을 건넨 소년이 무안하게 악마는 네 영혼이 삐쩍 곯아있어서 써먹을 방법이 없단다. 하핫. 거기다 더 재미있는 건 그 영혼을 살찌게 하는 방법으로 책을 읽으라는 거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도 못들어봤냐고. 이 무슨 어이없는 시추에이션인가 싶겠지만, 악마와 소년은 나름 진지하다는 것.

 
이쯤되면 이 존재가 악마가 맞는 건지, 혹은 악마를 가장한 천사인건지 우리는 알 수가 없어진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읽어본 적 있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렇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읽어봤을 리가 없지. 그 재미있는 소설을… 이라고 중얼거리는 악마 혹은 그 어떤 존재의 모습을 상상해보자니 어쩐지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유치해서가 아니라 깜찍해서, 진부해서가 아니라 황당해서 말이다. 나는 어쩐지 큭큭 웃음이 터질 것 같은 상황을 너무도 진지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이 악마가 실제로 보고 싶어졌다.

 
스토리의 결말 또한 그 흔한 갈등 구조 하나 없이 착하게 진행되는데, 그럼에도 이상하게 유쾌하기만 하다. 제 힘으로 누군가를 차마 죽일 수는 없고, 아버지의 복수는 해야겠고… 소년은 악마와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앞으로 죽어라고 책만 읽을 거란다. 네 영혼이 충분히 살찌울 정도의 독서량이라면 10년도 모자랄 거라는 악마에게, 하여튼 그거 읽으면 그 개자식들 다 죽여줄 수 있는 거냐는 어리숙하고 순진한 소년의 모습이 예쁘게만 보이는 거 보면.. 나도 참 책이라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지나친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결국 책을 열심히 읽은 소년은 마음의 양식을 쌓아 영혼을 살찌우게 되었는지, 그리고 악마와의 거래가 잘 성사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왜 책을 그리 많이 읽은 악마는 고작 악마 노릇이나 하고 있는건지는 미스터리지만 말이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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