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톤이 음산하면서도 한편으로 역동적입니다. 음울하게 흐르는 기운 아래로 굉장히 이질적인 생기가 끓어오르는 느낌이랄까요. 생존에 대한 인물들의 일차원적 의지가 매우 저돌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인상적으로 차별화해냅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톤이 좋아요.
제목의 ‘아이돌’은 이야기 속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단 하나의 욕망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 <우상>의 연출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가 여럿 보이기도 하네요. 우상을 향한 자기파괴적 동경, 마른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던 우상의 소름 돋는 실체, 어둠 속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흘러가는 서사, 변곡점이 되는 사건을 기준으로 급변하는 전개, 돌이킬 수 없이 극으로 치닫는 인물 간의 갈등, 고어물의 장르적 정체성을 선명히 드러내는 결말부 연출과 같은 요소들이 그렇습니다.
주인공 ‘희재’와 ‘명진’, ‘진욱’, ‘현성’, ‘원식’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이야기는 진욱을 제외한 네 친구가 펜션에 모이면서 시작됩니다. 진욱이 불참한 이유는 죽었기 때문이에요. 네 친구의 펜션 모임은 죽은 진욱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이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건 추모보다는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나오는 특유의 염세주의 때문으로 보이고요. 이를 반영하듯 이들의 캐릭터는 이름부터 외모, 능력까지 그저 판으로 찍어낸 듯 철저히 무개성적입니다. 누가 누군지 구별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죠.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이런 캐릭터 설정이 매우 영민한 서사 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중 하나라도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이 이야기 자체가 성립할 수 없거든요.
그럼에도 이 회색 톤의 인물들에게 단 한번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이들의 불우했던 성장기입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불행에 대한 묘사는 물론 전체적으로 훌륭하지만, 특히 이 대목에서 저는 밀도 높은 좌절이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나는 희망이라는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오늘은 엄마가 신경질을 내지 않기를, 급우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기를, 선생들이 나를 비꼬고 조롱하지 않기를, 아빠가 술 마시고 들어와 나를 때리지 않기를 하루 종일 기대하다가 기대한대로 되었을 때 안도하는, 그 정도가 내가 가지고 있었던 희망의 개념이었다.
분명 희망을 논하고 있음에도, 곁에선 불행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 들죠. 이런 불행한 유년들에도 어느 날 가느다란 빛줄기 같은 희망이 찾아옵니다. 그 희망은 다섯 친구가 어릴 적 깊은 산속에서 처음 만났던 ‘신이’입니다. 신이에 대한 주인공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 흐릿해졌고 그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죠. 다만 한 가지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신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황홀할 정도로 희망에 부풀어 있었으며, 친구들과 다 같이 가졌던 첫 만남 이후로 혼자서 비밀리에 신이와 여섯 차례나 더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주인공 재희는 그 시절 신이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불가해한 희망의 기억을 부여잡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겁니다.
그런데 이 희망은 애초에 누군가와 평화롭게 공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목에 표현된 ‘흩어진 아이돌’은 사실 인물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흩어질 수도 없고, 흩어져서도 안 되는 아이돌이었던 거죠. 주인공의 내면에 인장처럼 새겨진 신이의 기억은 다른 친구들도 모두 똑같이 품고 있는 욕망의 기억이기도 했거든요. 바로 이 지점부터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우상의 실체를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불행했던 다섯 소년은 찰나의 시간 동안 품었던 달콤한 욕망을 잊지 못한 채로 불행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유년기에 품었던 우상을 향한 동경이 그저 배타적 욕망의 환영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혼란에 빠진 이들의 목적지는 과연 어디를 향하게 될까요.
특히 결말부에서는 영화 <곡성>에서 나홍진 감독이 인상적으로 선보인 바 있는 컬트적 연출과 이미지가 강하게 연상되기도 합니다. 저에겐 기시감보다 장르적 쾌감이 훨씬 크게 느껴졌고요. 그만큼 기억과 혼란, 의심과 불신, 파국에 이르기까지의 내러티브가 강렬하고, 작가가 주제의식을 다루는 솜씨도 뛰어납니다. 앞으로도 이런 느낌의 작품을 계속해서 종종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