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베토벤과 조셉 셰리던 르 파뉴가 동시에 연상됩니다. 굉장히 매혹적인 이야기이고요. ‘진서’라는 이름의 평범한 중학생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작중에서도 셰리던 르 파뉴의 『카르밀라』(1872)가 짧게 언급됩니다. 소설 「카밀라를 위하여」는 분명 『카르밀라』를 오마주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중간에 <표범성의 카밀라>라는 작품을 경유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묘사되는 애니메이션 <표범성의 카밀라>에 등장하는 카밀라의 외모나 분위기는 소설 『카르밀라』 속 카르밀라와 닮았고, 아마 작품 전체적인 뉘앙스 또한 『카르밀라』의 모티프를 적극적으로 참고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톤 자체가 아주 강렬하고 인상적이어서 한 번 각인되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윤진서’는 약간 현학적이면서 위선적인 인물로 보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부모에게 얼마간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중학교 2학년 학생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그건 어느 정도 사춘기 청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했다고 봐도 좋겠죠. 어쨌거나 진서에게는 ‘안세미’라는 꽤 유복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눈에 띄는 디자인의 머리띠를 하고 다녀서 학교에서 곧잘 조롱거리가 되는 인물입니다. 물론 그 시기에 일어나는 다른 많은 부조리한 일들처럼, 그런 조롱에는 아무런 이유나 합리적 실체가 없겠죠. 그럼에도 진서는 그 비굴한 조롱에 은밀히 동참하며 시종 혐오 어린 시선으로 세미를 바라봅니다.
어느 날 세미의 집에 초대된 진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표범성의 카밀라> DVD를 가져가 함께 관람합니다. 그리고 세미의 비싼 구체관절인형의 이름을 ‘카밀라’로 지어주죠. 이제 둘은 ‘카밀라’를 매개로 서로에 대해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세미를 향한 진서의 이중적인 태도는 여전합니다. 거칠고 목소리 큰 아이들이 지나치게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학교 사회의 특성상, 세미와 각별한 사이임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은 진서 입장에선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학교 공간의 잔혹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야기는 이런 소재를 어떤 위악적 과시나 과장 없이 덤덤하게 풀어내는데, 그래서 더 힘 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편 진서의 담임교사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한심한 인물입니다. 학교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학원물에서 자주 묘사되는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보면 됩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도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한 바 있죠. 여기선 그 정도로 과장되진 않았지만 역할은 비슷합니다. 주인공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한층 더 부각하고 강화하는 겁니다. 학원물에 종종 등장하는 비교육적인 교사는 정말이지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선 진서에게 가장 절망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세미가 카밀라를 학교에 데려온 거예요. 진서는 세미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면서 둘이 함께 인형에 이름 붙이며 논 사이라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깁니다. 세미는 며칠 더 카밀라를 데려오다가 결석을 하고, 또 며칠 뒤에는 전학을 갑니다. 그리고 가기 전에 진서의 사물함에 카밀라를 넣어두죠. 떠나기 전 추억을 공유한 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을 텐데, 진서는 카밀라를 확인하자마자 누가 볼까 황급히 사물함을 닫아 버립니다. 그러곤 강한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히죠. 대체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든 걸까요.
결말부에서 진서는 인형 카밀라의 머리를 비틀어 몰래 4층 복도 끝 창문 밖으로 던져버립니다. 이때 진서의 머릿속에는 세미와 함께 관람했던 <표범성의 카밀라>가 재생되죠. 그리고 아마도 작가의 머릿속에선 『카르밀라』의 한 장면이 재생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겹겹이 중첩된 이미지들의 먹잇감이 된 채로 인형 카밀라는 처절하게 추락하고 맙니다. 마음 깊은 곳, 미지의 카밀라에게 매혹되어 던져버린 현실의 카밀라는 어쩌면 성마른 진서가 잊고 지냈던 모든 가치를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세계에서 어른이 할 일이란, 외로운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정말로 소중한 가치를 돌려주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일일 겁니다. 진서가 카밀라를 던질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손바닥에 핏방울로 제 흔적을 또렷이 남긴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