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인가, 異世界인가 – 대마법사 뉴턴의 제자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대마법사 뉴턴의 제자 (작가: 메타피, 작품정보)
리뷰어: 그림니르, 21년 4월, 조회 100

요즘 ‘이세계물(異世界物)’이란 장르의 작품들이 유명하지만, 이 작품 이전에는 해당 장르의 작품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런 작품들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아 유치하단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주인공이 과거의 역사 속이나 판타지 세계 같은 다른 세상으로 가는데, 그렇게 된 계기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주인공은 그 세계에서 알지 못하는 지식을 갖고 있기에 좀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받으며, 그 세계에서 성공하거나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산다.

주인공이 본래 자기가 살던 세계로 돌아올 경우는 십중팔구 전생의 사랑이나 어떤 교훈을 얻어서 돌아온다.>

 

 

위 문단을 읽으신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아마 적어도 수십 개는 될 소설, 드라마, 영화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어서, 이 작품 <대마법사 뉴턴의 제자> 1회를 읽었을 때는 이것도 저 틀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편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보니 작품을 계속 읽은 내 선택이 적절했구나 싶었다. 이 작품은 일견 이세계물이란 틀의 클리셰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그 틀을 벗어던지려고 시도한 참신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전형적인 이세계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한국 성인인 주인공은 갑자기 17세기 영국 소년의 몸으로 들어가서 그 소년의 신분으로 살게 된다. 그런데 그 시대의 사람인 부모들은 자기 아들이 숲에 갔다 돌아온 뒤로 도무지 이 세계 사람 같지 않으니 영국 마구니 체인질링(Changeling)*이 된 게 분명하다고 의심하며, 결국 사람이 되란 의미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보낸다. 그런데 주인공이 가서 보니 케임브리지 대학이야말로 체인질링 따위는 비비지도 못할 마구니 소굴이었다. 어전에서 기침소리나 내는 허접한 마구니(?)가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공포스런 진짜 마구니들이 걸핏하면 인간을 이용하고 공격한다.

(* 체인질링 : 영국 민간신앙에서 요정에게 바꿔치기 당한 아이를 이르는 말)

 

 

하지만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이 작품은 두 가지 요소를 등장시켜 일반적인 이세계물과 다른 길을 걷는다. 그 첫 번째 요소가 바로 실존인물이다.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 12년을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욕해 봤을 그 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 해병대라도 다녀오셨는지 마구니들을 잡고 다닌다. 주인공은 뉴턴의 수업을 듣다가 자기가 무신론자란 사실을 불어 버리는 바람에 반강제로 그 ‘노예’가 되고, 對마구니 최종병기 뉴턴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이 뉴턴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이야기가 좀 뻔해지겠지만, 이 작품은 뻔한 이세계물과 거리가 멀다. 주인공은 걸핏하면 “네가 무신론자란 사실을 까발리고 널 처형대로 보내 버리겠다!” 하는 뉴턴의 협박에 시달린다.

 

 

작품에 등장하는 두 번째 요소는 바로 풍부한 역사 속 사실들이다. 뉴턴 생전의 페스트 대유행, <사티리콘>이란 책의 존재, 커다란 알을 휘감은 뱀 문양, 캐서린(Catherine)이란 영어 이름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순수함(katharos)’이란 것까지 모두 실제 서양사에 존재하는 사실들이다. 심지어 뉴턴의 조카이자 주인공과 썸을 타는 캐서린 역시 실존인물이다.* 이렇듯 메타피 작가는 서양사 속 사실들을 조합해서 찜찜하고 아리송하지만 끊을 수 없는 공포를 창작해 냈다. 아마도 작가의 역사 지식은 수학 지식들만큼 방대할 것이라고 감히 관심법을 써서 예측해 보는 바이다.

(*Catherine Barton Conduitt, 1679~1739.)

 

 

이 두 요소들로 인해 이 작품은 묘한 현실감과 긴장감이 있는 이세계물이 되었다. 그러니 이세계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 보라고 추천을 날리면서 리뷰를 끝맺고 싶지만, 작가와 이 작품의 발전을 위해 개선해야 할 요소가 몇 가지 보여서 리뷰 마치기 전에 그것들만 간단히 언급해야겠다.

 

 

우선, 이 작품은 주요 독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외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불친절하다. 21세기 한국인 주인공이 17세기 영국인이 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주인공이 살게 된 17세기 영국이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거의 없다. 주인공의 집안이나 학교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설명도 매우 부족하다.

 

 

외국 역사는 어느 나라 독자에게든 생소하기 때문에, 이 작품처럼 외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배경, 용어, 지명과 인명 등을 설명하는 데 자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물론 메타피 작가는 역사적 지식이 방대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대해 설명을 거의 안 봐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독자들은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 용어, 인명 및 지명에 대해 서술이나 각주를 통한 설명을 좀더 자세히 해 달라고 작가에게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도, 어느 인물이 어느 별명을 가졌는지 작가가 한 번쯤 확실히 설명하고 이야기를 진행해 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머릿속에서야 인물의 이름과 별명이 착착 연결되어 있겠지만, 그걸 독자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독자는 이야기를 읽다가 헤롱헤롱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언급한 점들만 개선된다면 분명 이 좋은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작품은 모래밭에 묻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진주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페스트보다 지겨운 코로나19가 슬슬 다시 기승을 부리려는 이 시국에, 메타피 작가의 건강과 작품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만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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