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리리브 작가님의 단편 <몽마는 황제를 삼키지 않는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설은 가상의 황국을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마냥 평화로울 것 같던 황국에 ‘몽마(夢魔)’의 저주가 내리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치 떨어지기 직전의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했습니다. 서서히 위로 올라가면서 사람의 긴장감을 꽉 붙들어 매다 정점에 오르고 아래로 낙하하려는 그 순간 결말을 맞이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밑으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가 어떤 느낌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듯, 많은 부연설명이 없으면서도 상상의 여지 만으로 ‘이거 재밌는데?’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단편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읽으면서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소설이었는데, 특히 ‘몽마‘라는 소재를 차용하신 점이 좋았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꿈 속은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자 하나의 정신적 세계인데 그것을 침범할 정도면 굉장히 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몽마’라는 가상의 존재를 가상이지만 현실과 비슷한 제국에 대입함으로써 마치 설화나 신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단군 설화나 홍해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해 완독까지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본 단편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해석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말 자체는 꽉 닫혀 있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총 두 가지의 경우를 생각했는데, 이야기들이 다 어떤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비유적 혹은 설화 같은 분위기로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1) ‘몽마’는 전염병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본문의 시대상은 완전한 가상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칸느시아 황국‘이라는 나라 명, 왕을 ‘황제‘라 칭하는 호칭1, 작품 속 심심찮게 등장하는 후작이나 공작 등의 칭호로 볼 때 대략 동로마제국+중세시대를 어느 정도 배경으로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커피 언급이 종종 나오는데 과거 커피가 이슬람 세력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고 기독교가 국교였던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이교도들이 마시는 악마의 음료’라 알려졌다는 것이 문득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만약 중세시대를 어느 정도 참고하신 거라면 ‘나’의 가문이 기르던 작물인 커피가 사실 이슬람에서 전해져 내려온 작물을 연구하고자 키우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쓰다 보니 문득 생각난 것이, 커피가 ‘악마의 음료’인데 요나스가 몽마를 만나기 직전 ‘나’에게서 맡은 향이 커피 냄새였네요….
하여튼, 이런 중세시대를 어느 정도 참고하신 것으로 보이는 세계관에서 ‘몽마’의 존재는 전염병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발병한 질병이었는데 점차 발병자가 늘어나고 예방을 위해 마녀사냥까지 단행했으나 결국 황제까지도 감염되었다. 그리고 ‘플라디우스 가문’은 그 질병을 연구하고 발견했던 가문이었는데, 커피에 그 전염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음을 깨닫고 황제의 커피 복용을 끊게 만들었다. 끊게 만든 이유는 반역으로 추정된다.
몽마의 외관 묘사는 이 세상의 동물이 아닌 기괴한 형상입니다. 이런 묘사는 마치 중국 신화에 나오는 사흉(四凶)과 17세기 흑사병 유행 시절 의사들이 쓰고 다녔다는 역병 의사 가면, 그리고 염소(염소는 생식력이 활발하다는 이유로 서양에서 사탄의 상징이자 음란의 상징으로 쓰여왔습니다.) 의 모양을 합친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기괴한 모양새가 역병을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 본 이야기는 하나의 제국 몰락사를 설화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앞서 얘기한 설화, 신화 이야기의 맥락입니다. 예시를 들어보자면, 단군 설화 이야기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고자 환웅을 찾아갔는데 환웅이 마늘과 쑥을 주고 100일간 동굴 안에서 버티라 명했다. 호랑이는 며칠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갔지만 곰은 끝까지 버텨 ‘웅녀’라는 인간 여성이 되었다. 이후 환웅과 웅녀는 혼인하여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왕검’을 낳는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여러 역사 기록에도 남아있지만 근현대 시대의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현실적인 방향, 그 중에서도 토테미즘에 기반한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사학자들은 환웅이 타지에서 이주한 하늘을 숭배하던 세력이고 호랑이 토템을 숭배하던 토착 부족과 곰 토템을 숭배하던 토착 부족이 하늘을 숭배하는 세력(환웅)과 융합하려는 시도를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시도 과정에서 호랑이 숭배 부족은 결국 융합에 실패하고 곰 숭배 부족이 융합에 성공해 하나의 새로운 일족을 이뤘을 것이라는 시선인 셈입니다.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는 단군 설화 이야기를 한 이유는 글을 읽으면서 ‘만약 몽마가 이런 설화처럼 어떤 대상에 비유된 경우라면?’ 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플라디우스 가문’은 이전부터 타국의 모 가문(작품 속에서는 몽마로 비유되는)과 은밀한 거래를 해온 가문이다. 어느 날 불확실한 모종의 이유를 계기로 플라디우스 가문은 타국의 가문과 결탁하여 ‘칸느시아 가문’이 세운 왕조를 무너트리고자 한다. 타국의 가문은 ‘플라디우스 가문’이 자신을 배신할지의 낌새를 알아보기 위해 노예로 쓰기 위한 평민 666명을 요구했고 ‘플라디우스 가문’은 이에 응한다. 이후 서로 결탁한 두 가문은 미리 심어 둔 황제의 오른팔 겸 플라디우스 가문의 스파이가 황제를 혹해 황제가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대상을 미리 제거하고 방심하게 만든 뒤 반란을 일으킨다.
실제로 가장 가까운 대상이 알고 보니 반란의 중추였다는 이야기는 고대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다수의 반대파가 몰려들어 칼로 찔러 사망했는데, 그걸 주도한 사람이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브루투스였다는 실화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저의 해석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오로지 개인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다만, 저는 한 명의 독자가 되어 소설 속 내용에 대한 관점이 어떤 방식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지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플라디우스 가문이 정말로 몽마를 불러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모종의 이유로 반란을 일으키고 그것이 어떠한 비유의 과정을 거쳤는지는 이제 우리의 상상력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황제 요나스는 어떤 이유에서든 몽마를 이기지 못했고 앞으로 영원히 잠에 빠질 것이라는 사실 하나일 겁니다. 그것이 비유적 의미든, 사실적 의미든 말입니다.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글을 읽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