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두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4주년 이벤트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첫문장에서 훅 풍겨오는 그 쾌쾌한 윤활유의 찌든내가 야 이건 내 취향이 아닐 수가 없겠구나. 예산 배정을 위해 보고서에 4차산업혁명이 수식어로 쓰이고 알파고가 이세돌을 꺽는 시대에도 이 시대에도 여전히 전문가들의 추천이란 유효하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어요.
맞아요. 저는 제 신체를 기계로 바꾸고 싶어하고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고 기술 발전에 대해 어떤 종교적인 당위를 부여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이 의미있는 그런 장르를 좋아해요.
보통은 이런걸 사이버 펑크라고 많이 부르죠? 과도하게 성장한 기업이 국가마저도 초월하고 인간은, 인간성이란 마모되고 소외되어 자본과 기술의 부품에 불과한 장르.
저 세계의 불사신의 앞부분은 그런 사이버펑크 장르의 도식을 훌륭하게 따릅니다. 묘사되진 않았지만 항주 어딘가에는 네온사인 간판 아래서 수증기를 모락모락 풍기는 국수집이나 만두집이 있을거 같아요.
항주杭州에서 모든 물건은 공공재였다.
초입부에 있는 이 문장이 너무 끝내준다고 생각했는데, 역설적으로 공공이 부재한 항주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공공재와 사유재산이 분리된 곳이 아니라 질서라는게 없어서 모든, 심지어 신체의 부품 마저도, 것들이 더 힘이 쎈 자에게 약탈당할 수 있는 모습을요.
이런 끝내주는 배경을 끝내주는 문장으로 묘사하는 작품이 끝내주지 않을 수 없겠죠. 그래서 쭉쭉 읽었어요. 그리고 나서 뭔가 더 볼만한게 없을까 하고 작품 소개를 보는데 거기서 두번째 충격을 받았죠.
작가님이 밝힌 이 장르가 ‘러브코메디’ 라는 점이에요.
원래 리뷰를 쓸때 가장 거치적 거리는건 작가의 의견이고 자주 치워놓긴 하지만, 그래도 러브 코메디라는 장르에 입각해 작품을 독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일단 러브 코메디라는 장르를 생각해 봅시다. 예전에 작가 친구에게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로맨스에 경쟁 플롯을 쓴 작품이라는 해설을 들은 기억이 있어요. 러브 코메디의 영역을 확장하면 로멘틱 코메디와 구성적으로 크게 다르진 않을거 같아요. 결국은 사랑을 코믹하게 그려낸 작품이니까요.
최근에 읽은 이런 러브 코메디 장르의 작품 이라고 하면 ‘카구야 님은 고백받고 싶어’가 있겠내요. 이건 그 작가친구의 주장에도 딱 들어맞는 작품이에요. 두 사람은 사랑하지만, 끊임없이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고 거기서 나오는 긴장을 코믹으로 누르다가 사랑으로 빵 터트리는 그런 작품이죠.
아니면 읽은지 좀 되었지만 ‘황제궁 옆 마로니에 농장’도 떠오르네요. 이 또한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면서도 거기서 나오는 오해를 코믹으로 억누르고 최종적으로 사랑으로 터트리는 작품이었죠.
수많은 러브(로멘틱?) 코미디 중에서도 이 두 작품을 들고온 까닭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체급차 때문에 그래요. 카구야 님은 고백받고 싶어에서 일본 경제를 휘두를 수 있는 재벌가의 아가씨. 황제궁 옆 마로니에 농원에서는 막대한 황권을 휘두루는 정복군주로요. 이런 사람들과 경쟁이 가능할까요?
그러나 러브 코미디는, 제 작가 친구의 말대로 경쟁의 요소가 붙으려면, 두 사람의 체급이, 최소한 싸워볼만 하다 라는 생각이 들어야 겠죠. 회장은 그래도 학생회의 장으로서, 황제궁 옆 마로니에 농원에서 헤이즐은 농원이라는 샬롱의 주인이란 말이죠. 그렇기에 둘은 싸워볼 만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은 사랑으로 마무리 되고요.
다시 저 세계의 불사신으로 돌아오죠. 여기서 두 사람은 당연 금수산과 이모탈, 즉 새달을 의미할 거에요. 처음에 제시된 두 사람의 세계를 보면 새달은 금수산을 결코 이길수 없을 것처럼 보여요.
모든것을 가진 재벌 회장과 미친깡통녀. 그게 다죠.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초반부에서 사랑을 느끼긴 어려웠어요. 금수산은 새달을 좋게 여기는거 같긴 해요. 하지만 새달은 어떨까요. 그러니까 금수산이 새달에 대한 감정이 인간과 인간에 사랑 보다는 고양이나 트로피에 대한 감정에 가까워 보였어요.
물론 우리는 고양이를 귀엽게 느끼죠. 그게 마치 사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게 두 사람의 관계라고 보기엔 어렵죠. 우리는 일방적으로 고양이에게 주는 사랑을 끊을 수 있고 고양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고양이를 학대할 수 있고 고양이는 거기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마치 금수산이 새달에게 승부조작을 지시하고 거부하는 새달의 뺨을 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듯이요.
그러나 새달은 고양이가 아니죠. 새달은 떠납니다. 항주로요.
항주에서 새달의 모험을 보면서 무협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무공도 비인부전이고 아무에게나 전해지는게 아니며 쓰는 사람에 따라 성능이 변할수 있다면 남궁세가의 비전검술이 세강정밀의 외골격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겠죠. 세가의 명성은 곧 기업의 주가인 것이고요. 저잣거리에 주화입마를 부르는 삼류공은 자주 불량을 일으키는 인공폐로 치환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곳이 새달의 고향이었죠.
남정에 있을때는 링 위에 있을때만 그랬었죠. 그리고 항주는 거대한 링이었고요. 그렇기에 여기서의 체험이 새달의 내면을 일깨웠을 거에요. 세상이라는 링 위에서 어떻게 굴어야 하는가. 아니 이렇게 굴어도 된다고.
우리도 그렇잖아요? 근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잘하는 일이에요. 하지만 평소에는 불편한 옷을 입고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요. 근본적으로 좋아하고 잘 하는 일들을 하면서도 이게 어떤 불안감을 유발하죠. 하지만 고향에서 편한 옷을 입고 유년시절을 공유했던 친근한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그러니까 좋아하고 잘 하는 일들이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거에요.
그렇기에 이제서야 금수산의 세계가 아니라 새달의 세계가 선명하게 잡히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새달의 이야기고 자립의 이야기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고 금수산을 때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러브 코미디로 읽을 수 있는거 같아요.
이제 새달은 더이상 자신의 세계가 침범당하는걸 참지만은 않겠죠. 자신의 세계를 선명하게 인식했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참을 수도 있죠. 사랑은 언제나 예외니까.
그러니까 좋았어요. 끝내주는 SF고 약간은 무협이고 그리고 재미있는 러브 코미디여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