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행자의 이야기 – 눈꿈벌레> – 철학과 여행의 하얀 칵테일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어느 여행자의 이야기 -눈꿈벌레 (작가: 월풍, 작품정보)
리뷰어: 그림니르, 21년 2월, 조회 35

브릿G 리뷰단으로서 두 번째 리뷰를 쓰기 위해, 월풍 작가의 <어느 여행자의 이야기 – 눈꿈벌레>를 읽었다. 철학과 여행이 조화를 이룬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마치 하얀 칵테일을 마시는 것처럼 성숙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 리뷰를 쓰는 지금도 설날이 되기 전에 미리 한 살을 더 먹은 것 같다… 이거 큰일났다.

 

 

월풍 작가는 평소에 상당히 풍부하고 깊은 수준의 철학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작품에 펼쳐진 작가의 철학적 사고는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건 무엇인가?” 라는 불교적인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본격적인 리뷰로 들어가기 전에 작가가 이 문제들을 탐구하며 쏟았을 조용한 철학적 노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건 무엇인가?” 라는 문제는 작품 속에서 눈꿈벌레에 감염된 여인과 그를 사랑하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 나타난다.

 

 

눈꿈벌레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상상의 벌레로, 사람이 숙면을 취하면 (아마도 뇌파를 타고?)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꿈을 먹어 버린다. 꿈은 이 작품 속에서 단순히 잠들면 보는 환상이 아니라 인간의 자아 전체인 걸로 묘사되기에, 꿈을 먹힌다는 건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자아를 모두 잃고 포맷된 노트북 같은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작품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도 눈꿈벌레에게 꿈을 먹힌 사람을 그냥 잡아먹혔다고도 지칭한다.

 

 

사내와 여인은 부부인데, 안타깝게도 어느 날 눈밭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조난당한 여인이 사내가 구출하러 오기 전에 눈꿈벌레에게 먹히고 만다. 비록 여인은 기존의 자아를 모두 잃었지만 사내는 그런 여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도록 둘 수 없어 둘이서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간다.

 

 

사내는 지금의 여인이 더 이상 자기가 사랑하던 그 사람이 아니란 걸 스스로 인정하지만, 그의 무의식은 여전히 여인이 예전의 그 사람이라고 착각하거나, 최소한 예전의 사람이 여인 속에 남아는 있다고 생각한다. 사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예전에 스쳐 간 책의 제목 <What Makes A Bird A Bird?(무엇이 새를 새로 만드는가?)> 가 생각났다. 사내가 그 여인을 (자신이 사랑했던) ‘그 여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요소는 무엇인가? 결국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불교 사상에 따르면 사실 ‘나’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에 따라 모여서 이루어진 것일 뿐 그 실체가 없으며, 따라서 ‘나’의 존재에 집착할 필요 없다고 한다. 이것을 작품 속의 사내와 여인에게 적용시켜 보면, 사내는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의 실체라는 허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 뿐이므로, 여인의 실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여인의 지금 모습을 인정하면 사내가 겪는 내적 갈등도 해결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고(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도 수긍하고 사는 게 어디 쉬운가?

 

 

작품 속 사내의 내적 갈등은 결국 사내와 여인 모두의 사망이 예정된 비참한 결말에서 해소가 예고된다. 작품 마지막에 사내는 숙면에 빠지고 여인은 장작을 아궁이에 계속 넣는데, 이 작품 속에서 숙면에 빠진 사람은 눈꿈벌레에게 먹히고 자아를 상실하여, 눈꿈벌레에게 먹히지 않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결국 죽는다. 이제 사내는 곧 눈꿈벌레의 먹이가 되어 여인을 더 이상 지켜 주지 못할 것이다. 여인은 아궁이에 장작을 넣는 행동을 계속 할지 몰라도, 그가 계속하든 안 하든 결국 끝은 정해져 있다.

 

 

두 사람이 결국 죽으리라는 건 독자인 내 입장에서 슬프지만, 만약 작품의 설정 속에 사후세계가 있다면 두 사람은 죽은 뒤에 눈꿈벌레가 없는 그 곳에서 만나 다시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밤도 늦었는지라 리뷰를 이쯤에서 마치고 싶지만, 이 작품을 읽다가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작가의 발전을 위해 꼭 말해 주고 싶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이 작품의 문체는 전반적으로 외국어(특히 일본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느낌이 나서 한국인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조금 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말투에서는 그러한 느낌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외국 작품들의 영향을 받는 건 나쁘지 않지만, 독자들이 읽었을 때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문체를 써야 작품의 감동이나 느낌이 훨씬 잘 전달되지 않을까?

 

 

문체만 자연스러워진다면, 월풍 작가는 풍부한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자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월풍 작가의 작품을 읽은 사람으로서 작가의 향후 발전을 기대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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