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명으로부터 일어나는 거대한 균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해저도시 타코야키 (작가: 김청귤, 작품정보)
리뷰어: DALI, 21년 2월, 조회 101

이야기의 전체적인 뉘앙스가 인상적입니다. 온기도 없고 색채도 없는 세계관이 이야기를 꽉 쥐고 있는 듯하지만 그 밑에 굳건한 빛줄기가 변함없이 반짝이는 듯합니다. 해방과 공존을 향한 희망도 보이고요. 아득한 심해나 혹은 그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천선란 작가의 「레시」, 김초엽 작가의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같은 작품들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결은 다릅니다.

 

「해저도시 타코야키」라고 해서 도시의 이름이 ‘타코야키’거나 어떤 은유적 장치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제목 그대로였네요. 해저도시는 말 그대로 해저도시고, 타코야키도 우리가 아는 그 타코야키가 맞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다 읽고 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둘은 매치가 잘 안 돼요. 그리고 이 이물감이 작품의 뉘앙스를 신선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인 것 같습니다. 전혀 관계없는 임의의 두 단어를 제시하면서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보라고 했는데,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수작이 탄생한 느낌이랄까요. SF는 이런 이색적인 조합도 그냥 태연하게 글자 그대로 풀어낼 수 있는 강력한 매력이 있죠.

 

더 이상 지상에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바닷속 돔 안에 건설한 도시의 이름은 독특하게도 ‘태양’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문’은 돔의 외벽을 청소하는 청소부고요. 때문에 문은 자연스럽게 달로 인식되지만 실제 이름은 ‘문-AT0914’입니다. 외형과 담당 청소구역을 표기한 일련번호죠. 이 도시의 청소부는 모두 3년짜리 시한부 인생을 사는 개량 인간입니다. 알고 보니 문이라는 이름도 ‘Moon’이 아니라 ‘문어’에서 왔죠. 빨판을 이용하여 돔 벽에 몸을 고정시킬 수 있도록 개량한 것에 착안한 이름인 겁니다.

 

3년 동안 청소만 하다가 죽을 운명인 이들에게, 주관적인 감각은 허용되어선 안 되는 사치입니다. 매일 에너지바를 연료처럼 섭취하며 똑같은 일과를 반복해야 하죠.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청소부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아무리 청소에만 몰두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해도, 경험을 통해 다채로운 감각을 발달시키는 그 미묘한 과정까지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문은 어느 날 청소구역 외벽의 바깥에서 빛나는 식물을 발견하고 그것의 ‘살아있음’에 매료됩니다. 또 다른 어느 날에는 타코야키 트럭을 모는 ‘루나’를 만나 처음으로 맛있는 타코야키를 먹게 되고요. 난생처음 겪는 변수 앞에서 문은 혼란을 느끼지만, 실은 그 혼란이야말로 삶의 핵심 동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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