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브릿G 리뷰단으로 활동하게 되어, 리뷰할 첫 번째 작품으로 남산하 작가의 <조선 미스터리 : 장도의 비밀>을 읽었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뒤에 든 생각은 ‘새우 넣은 떡볶이’ 였다.
떡볶이는 재료가 구하기 어렵지도 않고, 그런 재료들을 많이 쓰지도 않고, 요리법이 특별히 어렵지도 않지만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감칠맛을 낸다. 이 작품도 그랬다. 작품의 재료인 ‘조선 시대 배경의 추리 미스터리’는 이미 같은 재료로 창작한 작품들이 세간에 많이 나와 있다. 게다가 작품을 ‘요리’ 곧 창작하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작품의 배경이 조선이기 때문에 창작의 바탕이 될 사료(史料)의 양도 방대한 데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덕분에 그런 사료들을 쉽게 찾아보고 작품에 녹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DB 만만세!)
게다가 이 작품은 재미는 재미대로 있으면서도, 창작의 재료 중에서 ‘사료’를 많이 쓰지 않아 일반 대중들이 편하게 읽기 좋다. 이 작품이 빈약하단 뜻이 아니다. 오히려 조선시대사 전공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조선시대 단어들이 많이 나오고, 국어사전에 있는 옛말들과 순우리말도 많이 나와서 작품이 가진 조선시대 향기를 한껏 살려준다. 특히 주인공과 연인의 관계에서 실제 조선시대에 그랬듯이 서로 하오체를 쓰는 점이 묘사된 건 금상첨화다. 솔직히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남산하 작가가 혹시 대학에서 조선시대 역사와 국문학을 복수전공하고 학위까지 딴 분이 아닌가 생각했다. 역사의 향기도 대중성도 모두 잡은 남산하 작가에게 진심어린 물개박수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그러나 마치 떡볶이 속에 떡볶이와 어울리지 않는 새우가 들어가면 “응? 뭐지?” 하게 되는 것처럼, 이 작품에는 작품이 가진 역사의 향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들어 있어 매우 아쉬웠다. 주인공의 연인 ‘오미령’과 관련된 무리한 설정과 전개들이 바로 그 요소였다. 작품 내에서 미령은 양반 가문의 딸인 것으로 나오는데, 그의 아버지는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무관의 길을 접고 장사에 뛰어들어 이익을 본 것으로 나온다. 실제 조선의 양반 대부분이 유교적 가치에 의거한 사고관으로 상업을 경멸했던 사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조선 후기에는 실학자들 중 이용후생학파가 상업을 긍정하였으나 그들도 어쨌든 양반이었기 때문에 상업에 직접 뛰어드는 일이 드물었다. 그들의 시대에 장사에 뛰어든 양반들이 존재하긴 하였으나, 그런 양반들은 몰락양반 곧 잔반으로 양반의 체면치레를 하다간 당장 굶어죽을 처지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당시 천하게 여겨지던 장사를 했던 것이다.)
게다가 미령이 납치되는 부분에서는 무리수가 하나 더 나온다. 남성인 악당은 물론 그 수하인 무뢰배들까지 양반 여성의 몸에 직접 손을 댄다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 양반 여성의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들이 그의 몸을 만지는 건 국가의 통치 이념인 유교의 윤리를 거스르는 일로 취급되었다. 이런 시각은 비단 조선 후기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작품의 배경인 세종 치세에도 드러난 바 있다. 세종 16년(1434) 편찬된 <삼강행실도> 열녀편에는 중국의 열녀 오씨가 수록되었는데, 그가 열녀로 취급받은 건 여관 주인에게 팔을 잡혔다는 이유로 자신의 팔을 도끼로 찍어서 잘라낸 덕분(?)이었다. 조선 시대에 양반 여성들에 대한 수사를 의녀(醫女)와 다모(茶母)들에게 맡겼던 것 또한 양반 여성의 몸을 남편이 아닌 남자가 만져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구현된 결과였다.
남편이 아닌 남성에게 신체접촉을 당하는 건 조선의 양반 여성 본인에게도 치욕이었다. 중종은 자신의 후궁 경빈 박씨에게 사약을 내리는 일을 남성인 낭관과 나장들에게 시킬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의녀들을 대신 보내 박씨를 사사했다. 또한 광해군 대에 인목왕후에게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계축일기>에는 인목왕후의 침실상궁 김씨가 나장의 손에 체포될 때 이를 치욕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미령의 납치 사건에서도 악당이 여성 불량배들을 동원해서 미령을 납치하는 것으로 사건을 전개했다면 이야기가 더욱 매끄러워졌으리라고 확신한다. 일단 미령의 납치에 관해 사건이 상당히 많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줄거리를 수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차후 전개될 이야기에는 조선시대의 시대상이 더욱 잘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내 사심을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산하 작가는 역사성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