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이야기는 ‘오해‘ 다. 사실 사랑이나 질투, 자존심…etc. 만큼이나 오랜 테마 중 하나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다. 다만 매력적인 소재를 어떻게 살리고, 다르게 만드는가야 말로 작가의 숙제일 테지만.
이 작품은 깔끔하다. 이 말엔 긍정의 느낌이 다분하다. 분명 부족하거나 아쉬울 때 쓸만한 말은 아닌 것. ’군더더기 없이, 좋다’라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어라? 딸랑 원고지 17매짜리 엽편이다. 부담없이 쓱- 읽을 만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짧아서 깔끔하다는 게 아님은 읽어보면 알 것이다.
황량한 서부 느낌의 SF의 옷을 입고서, 한 술집에서 조우하게 될지도 모를 세 인물의 이야기를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유발되는 긴장감을 빠른 속도감으로 보여준다.
사연들이 겹치며 이어지는 혹은 이어질거라 예상되는 사건들을 보는 건 오롯이 독자들의 몫이다. 자연 아… 그게 아닌데 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데, 그제야 다시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서 아, 제목 잘 지었네 싶었다. 재미있게 술술 읽혔고, 간결한 문체는 개인적으로 취향에 가깝다.
물론 아쉬운 점 없이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 오해로 얽힌 두 사람이 있다. 각자 다른 시간에 술집을 방문해서 동일한 한 노인에게 말을 건넨다.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매개인 셈인데, 다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낯선 곳에 와 누군가를 찾기 위해 목격자를 찾는 상황인데 다른 시간대의 두 사람 모두 자기 이야기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노인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털어놓는다. 인물들의 연결을 위한 장치로선 좀 어색하다 싶다. (정말로 무언가를 찾기를 바라는 상황이라면 묘사에 나오듯 동전들을 튕기며 바텐더를 구워 삼는 게 더 합리적일 것. 하지만… 그런 전개는 재미없긴 하다.)
- ’아이를 찾는 남자. 그러고 보니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 는 서술은 매우 모호하다. 이 작품은 처음 시작부터 중반 이후까지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는데 ’있었다’는 비슷한 사람을 논하게 되면 노인도 아닌 저 관찰자는 누구지? 싶게 된다. 뒷부분에 반전처럼 드러나는 제3의 인물, 킬러는 이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던 사람인 듯 자연스레 화자의 역할을 스위치하며 가져가지만, ‘그때로 되돌려보니 지금 노인 옆에 앉은 그 남자다’를 보면 중반의 저 관찰자와 킬러는 다른 사람이다. 킬러는 내용상 처음부터 끝까지 음흉하게 모든 것을 지켜봐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 킬러는 CCTV실에 있다. 그런데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것처럼 독백을 한다. 기본적으로 CCTV는 화면만 송출해주는 장치다. 화면 만이 아닌 술집 안의 소리를 따는 다른 장치가 있다는 걸 넌지시라도 암시해주면 더 좋을 뻔했다. SF라 해도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배경이잖은가? SF라고, 지금보다 미래라고 당연히 소리도 나오는 CCTV라 항변한다면 정말 실망스러울 것 같다. 그렇다면 저 감성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명칭도 CCTV라 하지 말았어야 한다 )
뭐냐고? 깔끔하다면서 왜 딴지냐고?
음… 사과드린다. 그러나 저 궁시렁의 대상은 휘리릭 보면 그런게 있나? 싶을, 크게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것들이다. 그러니 깔끔하다는 내 단언은 유효하다 주장하고 싶다.
변방 행성의 술집이면 어디나 있을법한 도어 종소리 그리고 어디에나 있지는 않을 것 같지만,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전자개가 있을 그곳으로 초대하고 싶다. (참 나는 호스트일 순 없으므로, ‘가보시라’~^^;;)
짧지만 SF 서부, 오해의 쌉싸름한 감성을 느끼고픈 분들이라면, 추천드린다.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