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떠나가더라도 한 점 ○○만은 내 곁에 있음을 감상

대상작품: 청백색 점 (작가: 김유정, 작품정보)
리뷰어: , 20년 12월, 조회 60

제목은 한창 힘들 때 혼자 생각했던 문장이다. ○○ 안에 채워 넣은 단어는 ‘고독’이었다. 다 떠나가더라도 한 점 고독, 허무, 공허만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필자의 경우에 고독과 공허는 관념이었지 실제로 시야를 지배하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은 여러모로 지대하다. 사람을 미치고 괴롭게 만드는 쪽은 단연 보이는 것의 위력이 크다.

본작의 주인공은 아주 어릴 적부터 제 곁을 떠나지 않는 청백색 점 하나와 더불어 산다. 이 점은 눈에 보이는 점이다. 불행히도 지구상의 인류 중 주인공에게만 보이는 듯하다. 아무도 그것의 정체를 모르며, 섣부르게 믿어주는 이도 거의 없다.

흔히 이런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주로 부모와 상담사에게 시달려 영원히 입을 닫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주인공도 잠시 그 길을 택한다. 그러나 거짓으로 얻은 평화는 오래가지 않고, 주인공은 언제고 점에 대해 말하지 않곤 배기지 못했다. 아주 어릴 때, 청소년기에, 어른이 되어서, 점점 더 늙어가면서. 빈도가 달랐을 뿐이지 언제고 주인공은 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건 그 청백색 점이 너무나도 눈에 보였으며, 단지 눈에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도 보이고 나에게도 보이는 무언가를 삼킬 수 있었기에 = 즉 점 너머에 미지의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모두 떠나가도 점만은 언제나 주인공 곁에 남아있지 않는가. 그것은 저주일 뿐 아니라 축복이기도 했다. 뭐든 질겅질겅 입질하며 따라다니는 강아지처럼, 오싹할 만치 집요하고 상냥한, 사랑스러운 것이었으니까. 반면 모두가 행복하다 하는 ‘평범한 일상’의 성격은 얼마나 잔인한지. 이해할 듯이 다가와 제 호기심만 채우고 돌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지독한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세파에 치인 날, 점 너머의 세계의 평온함을 맛본 주인공은 완전히 그쪽으로 넘어가려고 하나 실패한다. 너는 아직 멀었다며 밀어내는 천국의 문지기처럼, 점은 주인공을 받아주지 않는다. 매일 따라다니는 주제에 야속할 만큼 단호한 태도로 말이다.

이야기의 끝에서 청백색 점과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을까? 주인공은 점 너머의 세계로 다다를 수 있을까?

 

P.S.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의 이름이다. 본작의 청백색 점과 주인공의 정체, 그 관계에 대해 유추하는 자리에 보이저 1호가 찍은 사진을 끌고 오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