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에서 작가님의 작품 <레일월드>를 보내주신다는 글을 보고 흥미가 생겨 작가님의 글들을 휘이 둘러보던 중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수염을 길러온 탓인지, 유독 제목에 정이 가더군요. <털세계>. 이 얼마나 털보들에게 귀감이 되는 제목입니까.
제목만 보고 털과 관련된 재미난 내용이 아닐까 추측하며 작품을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를 품고 있음에 놀랐고, 전체 내용의 80%가 연설내용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털세계를 살아가는 털복숭이 인류와 연철도시를 살아가는 빠르고 작은 인류. 중간쯤엔 걸리버 여행기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작품을 모두 읽은 뒤에는 빠름과 효율을 추구하는 현인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흔히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3차 세계대전은 곧 핵전쟁이 될 테니까요. 아마 <연철도시>에서 마지막에 쏘아올린 ‘제단보다 큰 쇳덩이로 만든 못’은 핵폭탄을 의미한 게 아닌가 하고 짐작해봅니다. 태양보다 밝아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 그리고 다 빠져버린 털과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까지. 영웅 노란깃털의 모습은 방사능에 오염된 것처럼 보입니다.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핵융합기술이, 결국엔 <연철도시>를 자멸로 이끌게 된 것이죠. <연철도시>의 주민들이 두패로 갈라져 싸우는 것 또한 발전이 불러온 욕심에 의한 다툼이 아니었을까요? 발전은 곧 자본을 부르고, 자본은 곧 욕심을 잉태하니까요.
개인적으로 <털세계>를 보며 현 인류가 경계해야 할 무분별한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검은 산맥의 후손들이 받은 <유산>이란, 결국 ‘발전’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또한 무분별한 발전을 통해 점차 자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전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편하고, 빠르게 만들어주지만 결국 자멸을 초래하는 방향으로 이끕니다. 평소 발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저였기에 좀 더 작품에 공감이 갔습니다.
발전은 과연 발전일까요? 발전은 어쩌면 도태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라는 모습으로부터의 도태.
추신 : 그런데 마지막에 노란깃털이 노란수염으로 바뀐 것 같은데 의도하신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