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볼셰비키 작가의 유쾌한 소설과 그 안에 스민 독특한 메시지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캘리포니아 바다사자가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라는 제목의 이 단편은 반가운 정치풍자 소설이었다. 작가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와 개그 요소를 읽으며 정신없이 웃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의미에 당도하는 과정을 여러 작품을 통해 느꼈기에, 이번 단편 역시 기대를 가득 안고 읽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감동을 얻었다.
이 소설은 올해 치러진 미국의 대선을 배경으로 쓰였다. 이례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미국의 이번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의 재임 가능 여부에 큰 관심이 쏠렸다. 그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일삼았으며 환경과 기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이기적인 그의 행보를 보아 알 수 있었듯, 트럼프의 재임은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기에, 이번 대선이 특별한 주목을 받은 것이다.
우선, 현실의 결과와는 별개로 이 소설은 대단히 귀여운 미국 대통령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바다사자 대통령 춍키의 당선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전 세계 최초 ‘비(非)인간’ 대통령의 탄생을 경하드리며, 아니 최초의 ‘바다사자’ 대통령의 탄생을 축하하며 본 소설의 리뷰를 시작하고자 한다.
최초의 비인간 대통령
트럼프뿐 아니라 인간은 대체로 크고 작은 이기주의와 몹시 심각한 우월주의에 빠져 있다. 스스로 타인을 배척하는 것에 열심을 다하고 같은 종끼리도 의견을 모으지 못하는 것은 다반사다. 수많은 인간 대통령이 자연과 사회에 친히 실천한 수만 가지 악 때문에 우리는 이미 사회적으로 심각한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그렇기에 ‘최초의 비인간 대통령’의 탄생은 세계적으로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다.
춍키 잘로푸스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데에는 일련의 사연이 있다. 민주당 상원의원인 로버트 시고도스가 암컷에게 맞고 있는 수컷 바다사자를 발견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암컷과 수컷의 차별이 없는 춍키에게는 사랑하는 이에게 차인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워도, ‘암컷에게 맞는 상황’이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암컷에게 수컷이 맞는 상황을 그대로 보기 어려워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으므로 로버트 시고도스는 수컷 바다사자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그는 수컷 바다사자 한 마리를 거두게 된 것이다. 덜컥 바다사자 한 마리를 기르게 된 우리의 상원의원은 자신의 달 레일라 시고도스와의 상의를 통해 춍키를 돌보기로 결정한다.
레일라 시고도스는 상원의원인 아버지에게 춍키를 경선에 내보내자는 제안을 한다. 미국 경선 후보 조건에는 ‘인간종 포유류여야 한다’라는 조항이 없다. 이는 춍키가 경선에 출마하는 데에 아무런 제약사항이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존재의 대선 출마를 막지 않겠다’라는 의도로 해당 자격 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설마 동물이 대통령 후보로 등록하겠어?’라는 차별 어린 생각만 가득했다. 이는 인간의 세계에서 동물과 다른 존재가 얼마나 배척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고정관념은 단순히 경선 후보에 ‘반드시 인간만 등록할 것이다’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컷은 암컷에게 맞으면 안 된다’, ‘경선 후보에게는 그럴듯한 성씨가 있어야 한다’ 등은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편견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춍키 잘로푸스는 당당히 후보등록을 한 후,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해 최초의 ‘비인간 포유류’ 대선후보가 된다.
이후 대선에 출마한 춍키는 비인간인 자신에게 꽂히는 수많은 차별적 발언에 굴하지 않고 정치적 행보를 이어간다. 그를 도운 사람은 다름 아닌 ‘셀키’의 후손 신디 세르키스였다.
셀키의 후손
셀키는 유럽의 신화나 설화에서 등장하는 바다표범의 일종이다. 이 소설에서는 ‘물범 요정’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캘리포니아 바다사자’가 등장하는 이 소설에 썩 잘 어울린다. 셀키의 후손이라고 전해지는 가문은 작품 내에서 크게 셋으로 소개된다. (그중 한국의 강화도에 사는 어부 가족이 들어간다는 것은 가볍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설정이다.) 셀키의 후손인 세 가문 중 하나인 세르키스 집안에 태어난 신디는 자신이 물개어 검사와 치열한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다고 말하며 흔쾌히 춍키의 통역사가 되겠다고 한다.
작품 안에 쓰인 표현을 빌리자면, 셀키의 후손은 “과학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다. 이는 춍키가 인간들의 세계에 ‘인정받지 못한’ 것과 같은 맥을 취한다. 비인간 대통령의 통역사가 과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어떤 요정의 후손이라는 것이 그들을 한층 더 주류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그러나 변방의 위치에서 춍키와 신디 세르키스는 자신들의 일을 톡톡히 해낸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 ‘인간의 생각’에서는 배제되었지만, 그 누구보다 환경을 생각할 줄 알았다. 동물로서 직접 자연에 몸담고 살면서 인간의 횡포를 경험한 춍키보다 환경정책을 잘 낼 수 있는 인간 대통령은 존재할 수 없다.
춍키는 혁명적인 개혁을 이루어 나간다. 그의 귀여움 덕에 사업가들은 머리를 싸매고 산업을 규제하는 안건에 대해 의견과 정책을 제시한다. 인간이라면 권력과 힘을 통해 다소 폭력적으로 밀고 나갔을 정책을 춍키가 성공시키는 데에는 ‘귀여움’만 작용했을 뿐이다. 그건 어떤 분열도 충돌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마법 같은 일이었다. ‘귀여운 얼굴에 침 못 뱉는’ 인간들을 가장 정치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에는 춍키만큼의 적임자가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차별과 규제를 넘어서
춍키가 대통령에 당선된 일은 ‘인간의 차별과 규제’를 비로소 넘어선 것이었다. 로날드 돌란푸스 후보는 실제로 국제적인 환경 보호 조약인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하기도 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풍자하는 캐릭터다. 인간의 욕심과 탐욕을 임기 중 가장 잘 드러내기도 한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꼬아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가 이 소설에 등장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후련함을 안겨 준다.
로날드 돌란푸스 후보는 이전의 임기 동안 대단한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 환경파괴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에 반하는 캐릭터로 ‘춍키’가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개들의 규칙 하나. 짝짓기에 있어서는 암컷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 규칙 둘, 새끼 낳기 싫다는 암놈한테 교미와 출산을 강요하지 않는다. (…) 셋째, 우린 약한 개체가 있으면 먹을 걸 나눠주고, 넨째, 털 색깔이 다른 물개가 있어도 괴롭히지 않아. (…) 니들이 말하는 그 ‘인간다움’이라는 거. 결국 물개만큼은 잘 하자는 거 아니야?”
춍키는 로날드 돌란푸스와의 대선 토론에서 그에게 일침을 가한다. 대선 토론은 인간이 정의한 ‘인간성’이란 결국 지나치게 제한적인 것이었으며 우리는 물개만큼도 평등한 사회에 다가서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춍키는 인간보다 평등하고 자율적인 동물들의 세계에서 한심하다는 듯 우리를 보았을 것이다. 자신의 종족도 통합시키지 못하고 배척하는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논하는 것이 물개들에게 얼마나 한심스러웠을까. 우리는 “물-개보다 못한” 인간들이었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귀여운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뿐이다.
춍키를 데려온 로버트 시고도스 상원의원은 저명한 해양환경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다. 그가 부통령으로 취임해 춍키와 함께 이끌어나가는 미국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어떤 개혁에 대한 이상향처럼 보인다. 최근 치러진 미국의 대선을 풍자하는 소설임을 넘어선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성찰과 반성, 동물권과 생태계에 대한 진정한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된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는 단순한 ‘비인간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가진 모든 차별과 경계를 뛰어넘었으며 인간이 해낼 수 없던 것들을 척척 이루어갈 것이다. 비록 그것이 현실이 아닌 소설 속의 상황일지라도, 이 작품에는 인간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유쾌한 경고가 깃들어 있다. 바다사자 대통령의 탄생을 통해 우리는 어디까지 생각을 확장할 수 있을까.
인간의 다양한 형태와 생각, 무수히 많은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는 종종 동물의 위치를 인간 이하로 여긴다. 하지만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된 춍키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환경이 다치지도 않는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인간에게 상처 입은 자연의 존재가 인간을 이끌어가고, 인간이 정의한 인간성이 더는 편협하게 여겨지지 않을 어떤 세상을 상상하며, 지나간 미국 대선과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방향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는 유익함이 담긴 소설이었다.
비인간 대통령이라는 차별적 명칭이 아닌, 한 마리의 온전한 바다사자 대통령으로서 불릴 춍키가 이끌어갈 세계를 기대하고 응원하며, 심심한 축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