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각과 양각의 역전逆轉, 굴곡에 묻어나는 인간찬가 [독자가 영업합니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괴수를 위한 시간 (작가: ON, 작품정보)
리뷰어: 가온뉘, 20년 10월, 조회 63

* 타 SNS에서 비슷한 내용의 주접글을 발견하신다면, 제가 쓴 게 맞음을 미리 알려드리며…

* 맨 아래의 글갈피들은 저작권 프리의 픽사베이 사이트 내의 이미지와 KoPub 폰트와 브릿G 홈페이지의 로고를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독서의 계절 가을입니다. ON작가님께서 시즌1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고 오셨고, 지난 번 리뷰 이벤트 이후로 점점 윤곽이 선명해져가는 이야기를 보다가 다시금 저랑 같이 괴수를 위한 시간 읽어주십사, 하고 네 번째로 찾아왔네요. 독서의 계절 가을이잖아요??

책으로 따지라면 대략 400페이지 짜리의 대하서사라 일컫을 수 있을 분량의 <괴수를 위한 시간>(이하 괴수시간)은 저 말고 다른 분의 리뷰 제목에서 보실 수 있듯, 가독성과 탄탄한 밑바탕은 보장이 되니만큼 말이 400쪽 인거지, 날잡고 한 번 쭉 읽어나가신다면 뚝딱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인간 찬가 좋아하시나요? 스스로가 걷고자 한 길을 힘겹다, 힘들다 하면서도 기어코 꾸역꾸역 걸어나가는 그런 이야기요. 신념을 굽히지 않고 너덜너덜한 채로라도 걸어가는, 들풀들의 끈질긴 삶을 좋아하신다면 괴수를 위한 시간도 틀림없이 맘에 들 거라고 생각해요. ON작가님의 섬세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 탄탄한 세계관과 아주 덤덤하게, 그렇지만 분명하게 삶을 투쟁하는 자세를 조명하는 톤을 같이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괴수시간이 시즌1을 마무리해가며 스스로의 골격을 거진 다 드러낸 지금에서야 이 이야기의 특성이 도드라지게 나타납니다.

이전에 저는 다시 읽었을 때 보는 풍경이 달라졌다, 고 서술했던 그 감각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음을 지난 주말 올라왔던 96화를 보면서 다시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어요.

프롤로그 계승의 숲으로 시작해서, 주현 학생이 나오는 식인조 편, 제가 정말 사랑하는 강원도 실종사건~미로 편, 시점이 훅 바뀔지언정 들꽃의 이름을 찾아가는 야차 편, 다시 한 번 되돌아와 경쾌하기까지 한 서아의 잠입 편과 리현의 과거가 풀리고 있는 지금 파트까지. 각 파트는 일견 관련이 크지 않아보이더라도 저마다 다 연결이 되어있던 것이야 알고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보아왔지요. 사소한 점이 복선이었어!? 하며 놀라기도 하고, 아, 이거 분명 본 것 같은데 하고 되돌아보면 거기에 빠꼼 고개를 내밀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환상과 현실의 틈바귀를 나름 잘 돌아다닌다 생각했떠니만 웬걸. 리현의 과거가 풀린 부분들을 보고서 여즉 이어지지 않았던 계승의 숲마저 한 선상위로 떠오르니 읽을 때의 음각과 양각이 멋지게 역전이 되어있더군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직접 읽어보지 않고는 모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괴수시간은 단순히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기만 할 뿐이 아니라, 빛을 비춘 방향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는 조형물 같이, 혹은 M.C. 에셔의 <올라가기와 내려가기>처럼 경계선이 허물리는 기이함을 줍니다. 돌고 돌아 원점으로 나아가듯이요.

 

ON 작가님이 그리는 인간찬가의 서사는 바그너의 곡처럼 화려하고 웅장하지는 않을지언정, 들풀같이 은은하게 살아내는 담담함이 매력이예요. 기어코 포기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조금씩 제 살을 베어다가 쌓아내며 꾸역꾸역 살아내고자 했던 이야기. 지친 얼굴로 이게 할 일이기 때문에 터덜터덜 걸어가는, 또렷한 족적. 개인적으로는 안은영 쌤과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합니다.

아주 오래도록 살아버려서, 그럼에도 계속 꾸역꾸역 삶을 이어나가는 리현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비틀거리며 걷던 서아 사이에 이제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저는 시즌1을 계속 곱씹으며 기다릴 예정입니다.

아래로는 이 작품의 포인트라고 생각했던 일부 문장만 가져와봅니다. 지난 번에 가져오지 않았던, 후반부 문장 중심이예요. 작가님은 이런 느낌의 인간상을 그려내고 계셔요.

음각과 양각이 끊임없이 뒤집히는 세계와 그 교차점의 순간마다 묻어나오는 살아내는 인간들의 이야기, 한번 읽어보심이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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