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작가님이 속상해 하실 이야기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순 감상이 아닌 장단점의 분석을 원하셨기에 리뷰를 공모하신 것으로 생각되어 솔직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채택을 바라고 쓴 글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SF소설의 발전을 소망하는 애독자로서 드리는 리뷰입니다.
개인적으로 신, 영혼, 천국, 지옥 이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저 복잡한 유기체에 불과하고 우리의 정신이니 의식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도 뇌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메커니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요. 학부 시절 분자생물학과 생화학을 배우고 내린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자아란 무엇일까요? 내가 나라고 느끼는, 타 객체와 전혀 다른 어떤 독립된 ‘나’라고 느끼는 자기중심적인 그 느낌 말이에요.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는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합니다. 자의식이 없는 거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본인이 인간인 줄로 착각하는 안드로이드와 비슷하네요.)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면 한 인간의 자아가 형성돼 가는 게 눈에 보입니다. 부모의 말을 안 듣고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미운 네 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 이런 표현들을 쓰죠. 이건 반항하는 안드로이드를 처벌하는 인간의 심리와 비슷하네요.) 이건 위험하고 더러운 거니까 갖고 놀면 안 되는 거야, 라고 가르치면 조금 반항하다 말을 듣는 체 하지만 부모가 한 눈을 파는 순간에 기어이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맙니다. 꾸중과 실랑이가 계속되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장난에 시들해집니다. 부모의 말이 통한 게 아니라 그 장난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 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장난을 시작한 것도, 끝낸 것도 스스로 결정을 내린 것이죠. 그 뒤로는 새로운 반항과 도전이 이어지고 아이는 20년 뒤 부모와 완전히 독립된 객체로 거듭나게 됩니다. (소설에 표현된, 안드로이드의 신인류화 선언)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의 의지가 자아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소설에서도 그런 가치를 다루고 있습니다. 타인 혹은 창조주(부모)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던 안드로이들(아이)이 자의식과 의지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인간(부모)에게 불만을 품고 혹은 본인들이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혁명(반항과 독립)을 일으키려고 하죠. 인공지능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라면 흔히들 짚고 넘어가는 주제입니다.
사실 서사도 그리 참신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에게 반항한 죄로 검거돼 심판 받는 안드로이드. 그러한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이들, 본인이 인간인 줄로 착각한 안드로이드. 이미 몇 십 년 전에 필립 K 딕의 소설에 등장한 설정이니까요. 심지어 주인공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본인도 혹시 안드로이드가 아닌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도 하죠. 차를 타고 가면서 묘사된 주변의 풍경이나 상황도 미래 사회를 다룬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비슷하게 묘사된 거라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스스로를 인간으로 의식했다는 반전은 꼭 SF가 아니더라도 이미 여러 번 등장한 장치입니다.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 같은 게 있겠네요. ‘이마 이치코’ 만화 <백귀야행>에도 본인이 인간인 줄 알았던 여우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자타가 인간인 줄 알았던) 상사가 펼치던 철학에서 이미 그의 정체를 예상할 수 있었고요.
다만 안드로이드가 자의식을 갖게 되는 그 논리의 흐름이 표현돼 있어서 좋았는데요, 그럼에도 매끄럽지 못 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냐면 주인공의 의식전환이 일어나는 지점이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처벌/심판할 수 있다’는 부분인데 사실 ‘검거’와 ‘처벌/심판’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검거는 경찰이 하고 심판과 처벌은 사법부에서 결정하는 것처럼, 미래 사회도 그런 식으로 굴러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온갖 일을 안드로이드에게 맡겨도 법적인 해석과 판단은 인간들이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만일 소설 속의 사회가 재판조차도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린다는 설정이 나왔다면 주인공의 논리에서 허점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재판을 인공지능에게 맡긴다는 설정은 사계절출판사의 <마지막 히치하이커>라는 책에서 봤는데요. 은이결 작가님의 <절대 정의 레이디 저스티스>라는 아동/청소년 용 단편입니다. 이것도 인공지능에 대해 다룬 이야기인데 아이들을 대상으로 쓴 이야기임에도 꽤 철학적이라 생각할 거리가 많더군요. 추천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이야기가 한창 진행될 듯 하다가 뚝 끊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데요. 아마도 다른 소설의 프리퀄로 쓰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 다른 안드로이들을 변화시킬지, 그리고 어떤 혁명을 일으킬지, 인간들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뒷 이야기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