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되 변하지 않기를- 주키르엘 러버의 아무말 대잔치 리뷰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주릴과 세 개의 탑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예랑, 20년 8월, 조회 57

안녕하세요. 뭔가 간지나게 쓸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다가 써봅니다. 무엇이든 적히지 않은 글보다는 낫기를 희망하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싶은 부분은 그냥 무시해 주세요..

 

저는 작가님 다른 작품인 <그 누구도 아닌, 루>를 먼저 보고 <주릴과 세 개의 탑>을 보게 되었어요. 지금은 연재 중이 아니지만 루의 이야기를 인상 깊게 읽어서 다른 작품도 냉큼 따라가 보았습니다. 와! 여주 판타지! 화수도 많다! (그 때 이미 80화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 그 나이답지 않게 시니컬한 학자 같아 보이는 주릴은 첫판부터 환멸 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에이리나 촌장이나 베냇병신(….)에게 엿을 먹이고, 주릴은 분연히 떨치고 나아갑니다. 학대의 장소인 다마라 마을을 떠나, 목소리의 정체와 자기 자신을 찾아서.. (개정판은 내용이 달라졌지만요)

항구에 도착한 주릴의 눈에 비친 활력 있는 도시의 풍경이 무척 생생해서, 무척 흡족스러운 마음으로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무척 똑똑하게만 느껴졌던 주릴이 처음 제한된 세계 밖으로 나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니 마음 속 거리감이 좁혀졌습니다. 트라우마로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참 안쓰러웠구요ㅠㅠ.. 그리고 네키르엘과 만납니다. 남의 여관방에서 자더니 돈도 훔쳐가는 골 때리는 친구지만 처음부터 밉지 않았습니다. 주릴에게 빠른 갈굼을 당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네키르엘은 주릴을 제대로 봐준 사람이니까요. 모난 부분들도 있지만 결정적인 부분이 괜찮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가 이상한데도 애매하게 괜찮은 인물로 계속 그려지는 경우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경우가 문제지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게다가 빠른 반성과 빠른 변화! 애들은 참 빨리빨리 크네요. 저는 성장하는 청소년 주인공들에게 늘 진심입니다.(누가 들으면 할머니인줄) 주먹자랑을 하다 감옥에 갇힌 네키르엘에게 무모하다고 타박하던 주릴이 망설임 없이 네키르엘을 모욕하는 선원의 어깨에 단도를 꽂을 때, 저도 이 친구들의 이야기에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주릴이 앞뒤 안 가리고 진심을 보여준 것 처럼요.

 

제가 주세탑에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챕터 9의 6화 (139화)에서 네키르엘이 주릴과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다고 하며, 주릴을 ‘무슨 뜻인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첫 문장부터 마력에 사로잡혀 계속 놓지 못하게 되는 책’ 같다고 한 부분인데요. 물론 책을 좋아해서 책에 비유한 게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지만, 제가 <주릴과 세 개의 탑>에 가지는 느낌이랑 비슷해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기 보다는 묘하게 끌린다는 점이 비슷하달까요? 물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할 때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될 것 같았지만, 어째서 특별히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주릴과 세 개의 탑>의 세계는 확실히 상냥하지는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환상동화 같은 느낌을 많이 주는데, 따스한 동화가 아닌 잔혹동화에요. 밤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방으로 돌아가면, 심술궂은 요정들이 나타나 사실 그거 아니라고 하면서 들려줄 것 같은, 동화의 뒷이야기 같습니다. 세상은 주릴에게 가혹하고 비틀려 있고, 주릴은 고통 받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처럼 신랄한 농담을 자주 내뱉습니다. 내면의 갈등은 끝이 없고..네키르엘은 네키르엘대로 고생이고.. 어쩌면 시무룩해지는 내용이 많은 것도 같지만 그래서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해요.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주세탑의 세계는 제게 기묘한 위안이 됩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의 글이라서 그런가봐요. 물론 모든 작가분들이 이야기를 사랑하시겠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쓴 이야기라고 느껴지는 글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이미 익숙해져버린 이야기들이 있죠. 고전.. ‘정상’의 이야기들.. 주세탑은 스테레오 타입의 이야기를 비틀고 그런 이야기(공주를 구출하는 기사 이야기라든지..)는 질렸다고 말하는 소설이지만 그만큼 작가님이 이야기 자체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느껴지는 이야기. 말하고 싶은 것을 돌아 돌아 이야기로 써 주신 작가님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가 제 앞에 있습니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을 때 다른 일을 하는 대신 이야기를 읽는 것을 선택한 저 같은 독자를 긍정하는 이야기가요.

 

그래서 말인데, 주릴과 네키르엘이 초반에 계약(?)할 때 기사와 레이디라고 지칭하는 것이 웃기고 좋았어요. 절대 고전적인 기사와 레이디 구도가 아니라서 좋았습니다. 주릴과 네키르엘이 이 명칭을 악용(?)하며 못된 인간들을 털고 다니는 걸 보고 싶다는 이상한 바램이 있습니다. “앗, 너희 뭐야!” 하면 “기사와 레이디.” 라고 하는 것이죠. 세상을 조롱하는 것이다!(???

 

주릴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주릴은 모쉬나와 접촉하고 체인질링의 힘을 각성해 나가면서 외모가 변화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쁘다’라고 부르는 외모 쪽으로 바뀌죠. 하지만 그것이 마치 박씨부인 마냥, 예쁜 외모로 환골탈태해서 행복해진다는 설정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주릴은 자신의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자해를 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까지 하지요. 외모의 변화는 곧 자기 자신을 잃는 일이니까요. 작가님께서 전에 주릴은 정상성을 동경하지만 정상의 범주에 속하고 싶지 않아한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는데, 굉장히 공감 되었어요. 흉측하다고 여겨지는 외모 때문에 배척 받는 것도 큰 고통이지만,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정상의 범주에 속함으로 얻는 소속감이나 안정은 부럽지만, 애초에 ‘정상’이란 타인이,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정한 개념이지요. 그렇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또 재밌는 것은, 러프하게 ‘예쁜 외모’라고 말했을 뿐 ‘요정화’는 정상의 범주에서 오히려 벗어나는 과정이라는 점인데요. 비안티렐 숲의 요정 묘사에서도, 모쉬나의 모습에서도 느꼈지만 요정은 인간의 ‘정상’ 바운더리에 함부로 집어넣고 이렇게 저렇게 평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비안티렐 숲 요정들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감히 아름답다고 말하기에는 경이롭고 두려운 느낌을 줍니다. 저는 미학에 대해서 거의 모르지만, 주세탑에서 미 관념이 완전히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네키르엘은 엄청 잘생겼고요) 하지만 주세탑은 ‘정상’의 폭력을 비틀고, ‘미’에 대해 훨씬 더 유연하게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주릴은 두 개의 탑을 거치면서, 네키르엘과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면서요. 사실 읽으면서 헷갈리는 부분도 있었고, 아직 주릴이 최종적으로 어떤 존재가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주릴이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항상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릴이 변하면 좋겠지만, 변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변화함으로 변하지 않게 될 수도 있겠죠. 그게 일반적인 기준에 맞든 안 맞든 상관없어요. 주릴이 변화하면서 세계도 변화합니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뒤틀림은 세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까요?

 

그리고 로판러로서 주릴&네키르엘의 관계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주세탑은 거의 투탑물에 가까울 정도로 남주 네키르엘 비중이 높죠. 버디 여행물이라고 해야할까요? 주릴과 네키르엘 모두가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네키르엘 서사도 아직 다 풀리지 않은 것이 많아 조마조마 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둘은 서로를 좋은 친구라고 지칭하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초반은 서로 거친 언사^^(지랄을 입으로 탭댄스..)를 주고 받으며 친구라고 부르기도 어색해 했죠. 초반부 둘의 관계는 서로 진짜 싫어하는 건 아니니 혐관은 아니고 약간 남매(?) 같았습니다. 서로 극혐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남이 상대를 건들면 난리가 난다는 점에서.. 그랬으나 지금은 서로를 정말 소중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어요. 로맨틱한, 혹은 성애적 텐션이 잘 없어도 저는 이 천천히, 그러나 탄탄하게 쌓아올린 관계성이 무척이나 귀중하게 느껴집니다. 희귀하다고 말하는 드라마틱하고 불꽃같은 사랑 이전에 서로를 진실한 이해자라고 느낄 만한, 진정한 우정(이든 뭐든 그런 관계)가 현실에 드물잖아요. (사람들이 다 진심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기 힘들기 때문에) 그래서 주키르엘이 맨날 싸우긴 해도(…)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만 봐도 흐뭇합니다. 서로 도와주고 보완하는 관계, 너무 멋져요. 물론 로맨스 착즙러인 저! 주세탑에도 로맨스가 충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으하하.. 이상하게 저는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너무 잘 사귀고 있으면 별 생각이 안 드는데 로맨스 요소가 적지만 있긴 있을 경우 로맨스착즙 뇌가 팽팽 돌아가더군요(??) 전에는 두 주인공 분가엔딩(?)까지 예상했으나 지금은 한집 살이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말 ‘찐’인 장면들이 있잖아요. 둘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날조해석 주의) 여주판인 줄 알았는데 로맨스가 있다거나 로맨스물이라고 하기에는 적다거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섞인 맛이 제일 맛있는 거라구요~

 

(아무튼.. 개인적인 생각이 그러할 뿐입니다… 이상 테일러 스위프트 This love 무한 재생중인 사람으로부터..)

 

아니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제가 당연히 주세탑을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완결까지 좀 남았지만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저는 주릴과 네키르엘이 꼭 행복해질 것이라 굳게 믿어요!

 

소설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하켄의 존재 이유 정도.. 주릴 고문당하는 장면은 두 번은 못보겠어요 흑.. 정주행할 때도 그냥 넘겼답니다. 아무튼 구구절절하게 길어졌으나 제가 주키르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졌기를 바랍니다. 행복해라 얘들아..

 

<주릴과 세 개의 탑>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판타지 성장물’이 되겠네요. 다시 <그 누구도 아닌 루>의 제목이 생각나요. 그 누구도 아닌 주릴이 되길. 변하되 변하지 않기를. 그러면서 외롭지도 않길. 주세탑을 읽을 때는 외로움이 덜어졌어요. 이야기란 정말 멋지네요. 저도 언젠가 저만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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