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의 폐쇄성이 확장되면서 주는 공포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바깥 세계 (작가: 녹차빙수, 작품정보)
리뷰어: 랜돌프23, 20년 8월, 조회 147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공포물의 매력적이면서도 클래식한 주제를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귀신/악령 들린 집 (아미티빌, 컨저링 시리즈 등등)

귀신이 나오는 호텔 혹은 호텔방 (샤이닝, 1408 등등)

외부와 단절된 채 기행이 상식이 된 마을 (위커맨, 미드소마 등등)

그 외에 ‘산장에 등장한 살인마’, ‘살아움직이는 인형’ 등등 여러가지가 더 있겠지만, 아무튼 위에 나온 소재들은 공포물을 좋아하신다면 그에 해당하는 작품을 한 번쯤은 보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더라도 관련 작품의 이름은 들어보거나 대략 어떤 건지 감이 잡힐 정도는 될 거라 생각됩니다.

클래식하다는 건 부정적으로는 ‘진부하다’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시간이 흘러도 잘 먹히는 것’이라는 뜻도 됩니다.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위 주제들은 공포물을 쓴다고 하면 한 번쯤은 꼭 ‘내 방식대로’ 써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것(고전적인 매력이 있죠. 호러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ㅋㅋㅋ)이긴 한데, 이미 많은 작품들 (혹은 이미 전설적인 작품이 하나) 나온 터라 잘못하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졸작’/’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아류’가 될 우려도 있는 소재라 보입니다.

그 중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기행이 상식이 된 마을’, 닫힌 공동체의 폐쇄적이고 뒤틀린 풍습을 다루는 건 너무나 매력적인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리뷰할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워 이루어지는 마을 축제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이루어지는 인신공양의 일환이었다거나… 뭐 그런 거 말이죠. 관련한 영화로는 어릴 적에 본 <인구수 436>이라는 영화가 굉장히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인구수를 436명으로 유지해야 하고, 그보다 많거나 적으면 안 되기에, 아이가 한 명 태어나면 제비뽑기인가 뭔가로 사람 한 명을 뽑아 교수형에 처하는 장면이 준 충격은 여전히 뇌리에 강렬히 박혀있습니다. 그 와중에 죽으러 가는 여자가 ‘저는 너무 기뻐요, 기쁘게 죽음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던 건 어릴 때 제 악몽을 책임져주기도 했습니다 ㅋㅋㅋㅋ

‘외부와 단절된 채 기행이 상식이 된 마을’이라는 소재가 주는 공포는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로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선과 악의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

 

현대 사회에 선과 악이라는 개념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 얼마나 계실지, 애초에 정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확신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걸 떠나서 사람들은 수많은 행동들 중에서 선과 악의 경계에 속하지 않는, 명확히 선이거나 악에 분류되는 것들이 있을 거라는 일종의 희망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심심해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 한 명 데려다가 죽이는 건 악입니다. 이걸 선으로 여길 여지는 정말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면, 재난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뛰어드는 행위는 정말 숭고한 선입니다. 이걸 악이라고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습니다. 왜인지는 설명하기 어려워도, 우리는 그런 것에서 선과 악의 절대적 기준 같은 걸 느끼고, 또 그런 게 있을 거라고 희망하거나 믿습니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채 기행이 상식이 된 마을’을 다루는 공포물에서는 이런 걸 뒤집고 관객의 가치관을 혼란하게 흔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위커맨>에서는 크리스트교의 상식이 뒤집힌 문란하고 야만적인 풍습이, <미드소마>에서는… 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미쳐돌아가죠 ;; <인구수 436>에서는 일반적으로는 특별한 가치를 가지지 않는 특정 숫자와 인구수라는 개념이 절대적인 수호가치로 등장합니다. 그 아래에서 우리가 ‘의심할 여지 없이 악’이라고 생각했던 행위들이 정당화되고 오히려 장려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걸 평범한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위화감과 낯섦, 사람의 모습이지만 사람다운 가치를 지키지 않는 마을사람들에 대한 불쾌감과 소름을 느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묻는 거죠.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는 하는 걸까?’

러브크래프트는 인간이 미지의 것에서 공포를 느낀다고 했지만, 저는 거기에 더해 ‘불확실성’과 ‘비절대성’도 공포에 한몫 보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거라 생각했던 가치들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우리가 수호하고 지키고자 했던 가치들이 사실은 인위적인 것이고 무의미하다는 걸 느낄 때 느껴지는 허무함과 무상함 같은 것 말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녹차빙수님의 <바깥세계>를 본격적으로 리뷰하겠습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위에서 제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서론을 보고 저런 소재에 흥미가 생기셨다면,

녹차빙수님의 작품을 먼저 읽어보시고 리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녹차빙수님의 <바깥세계>의 시작은 ‘외부와 단절된 채 기행이 상식이 된 마을’의 전형적인 흐름으로 보입니다. 과거에 극복하지 못 한 트라우마가 있는 주인공이 한 마을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곳에서 이상한 징후를 몇 개 포착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나중에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 하게 되고 거의 갇히다시피 발이 묶이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 마을 내부를 살펴보다가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느끼게 되는 폐색감, 공포, 절망…

물론 ‘전형적’이라고 해서 훌륭한 게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리 참신한 방식을 써도 재미없는 작품도 많고, 전형적이지만 무진장 재미있는 글도 많으니까요. 전형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초반부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특히나 동네에 한 번 들어왔으면 36일동안은 못 나가는 게 상식 아니냐며 다그치는 부분에서는 저도 잠시 머리가 멍해지더군요.

하지만 이 소설의 재미있는 부분은 그 뒤부터입니다. 초반은 ‘외부와 단절된 채 기행이 상식이 된 마을’의 전형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듯 하지만, 이때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폐쇄성’을 ‘개방성’으로 뒤집고 비트는 전개가 나옵니다. 제 식견이 넓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가 지금까지 본 작품들은 ‘기행이 상식이 된 장소’가 고정되어있고, 폐쇄되어 있어서, 바깥으로 확장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주인공이 탈출하는 것이 최고 목표가 되거나, 아니면 외부에 이 사실을 알려 고발하는 것이 간접적인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주인공에게 지금 갇혀있는 장소와 대비되어 돌아갈 ‘바깥의 정상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그 존재가 끊임없이 이곳이 비정상임을 대비시켜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재를 가지고도 제목이 ‘바깥세계’라는 꽤나 아이러니한 표현을 작가님이 쓰신 것에 걸맞게, 이 소설은 그러한 ‘주인공이 돌아갈 정상적인 바깥 세계’를 지워나가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더라고요. 바이러스처럼 비상식이 상식으로서 세상에 퍼지고 확장되어서, 도망갈 곳도, 탈출할 곳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하게 기행이 상식으로 통하고, 그걸 비상식이라고 울부짖을 사람은 주인공 한 명밖에 없게 되는 막막함과 절망!

어느 소설에서 나왔던 건지는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맹인의 세상에 애꾸눈은 왕이 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맹인의 세상에서 애꾸눈은 비정상이며, 그들이 애꾸눈의 남은 한쪽 눈마저 찌를 것이다’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즉, 세상에서 상식과 비상식은 사실 절대적인 가치로서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다수냐 소수냐에 따라 정해지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미로 사용된 말이었습니다.

이 말대로, ‘고통이 행복이자 쾌락이다’라는 구호 아래에서 자해하고 자살하고 고문하고 학대하는 세상에서, 주인공이 혼자 그게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그게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홀로 기존의 상식을 간직한 사람은 그곳에서 유일한 비상식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멀쩡한 정신으로 지옥에 걸어들어가는 것과 같이 끔찍한 형벌이나 마찬가지겠지요.

‘외부와 단절된 마을’에서 ‘외부와 단절된’ 부분을 없애고 세상 전체를 ‘기행이 상식이 된 곳’으로 만드는 전개가 정말 좋았습니다. 스케일을 확장시켜서 기존의 소재가 가지고 있던 특성과 클리셰를 뒤집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

 

2018년판 <서스페리아>의 충격의 마지막 시뻘건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크툴루의 강림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 같은 광란의 유혈축제의 끔찍하고 고어한 묘사가 즐비하는 후반부는 이러한 기존 상식과 가치의 전복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사용되는 것이라 중심내용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드러내는 표현방식은 감탄스러웠습니다. 저라면 그런 끔찍한 상황이 얼마나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규모’에 집착해서 끝도 없이 장황하게 묘사했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아니라 주인공의 시선에 담긴 전체의 파편들만 묘사해서 주변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걸로 나머지를 상상하게 하는 절제가 좋았습니다.

 

트라우마로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중반부에 소재의 전형적인 듯한 흐름에 타고는 후반부에 그걸 비틀어 확장시킴으로써 뻥하고 터뜨리는 구성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트라우마’가 주인공의 여동생의 동기와 연결되는 지점도 좋았습니다. 다만 여동생이 마음이 돌아서는 동기가 보다 강하게 묘사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몸에 갇혀 ‘바깥세계’에 대한 동경과 증오를 키우던 여동생이 나중에는 내부의 끔찍한 세계를 ‘바깥 세계’에 확장시켜 지옥으로 만드는 이미지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매력적으로 쓰시다니, 감탄스러운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마을’을 소재로 공포소설을 멋지게 쓰고 싶은데, 더 노력해야겠네요 ㅎㅎ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이번에도 서론이 본론보다 길었네요.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무시무시한 소설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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