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초반부에 이방인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그 문단을 보는 순간 ‘허무에 허무를 거듭하는’ 소설이 아닐까 예측해봤습니다. 제가 이방인에서 느낀 감정을 더 심화시키지 않을까 여겼거든요. 그리고 집중해서 소설 끝을 보니 그 예측이 틀린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허무는 메인 테마는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는’ 소설이었죠.
주인공은 작가로서의 비상과 몰락을 단시간내에 경험합니다. 마치 급속히 발전하다 급속히 위기에 빠져 국가부도에 빠진 97년도의 한국과 같습니다. 하지만 동아줄은 여전히 있는 것이고, 여행기는 그런 발판으로 보입니다. 비록 주인공이 처음에는 그것에 부정적이었지만, 결국 수용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좋지 못했던 것이겠죠. 더욱이 보통 고난한 상황에서 여행을 간다고 하면 ‘휴식’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지요. 그런 면에서 주인공에게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원래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던 간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자 혼란을 떠나 좀 쉴 수 있는 안전 장치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행이 지닌 정반대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고난에 빠졌을 때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끝’인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세계로 도피해서 이전 세계와 단절하던가, 아예 삶을 끝내는 비극적인 경우도 있죠. 이번에 주인공이 여행지에서 겪었던 일은 그런 쪽에 가깝습니다. 여행지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혼란의 세계에 빠집니다. 책을 찢는 사람들, 조안 킹 선서라는 의식. 모든 것이 주인공을 가만히 쉬도록 두지 않습니다.
차라리 여행지에서 있을 수 있는 ‘기분 나쁜 일’정도였다면 가볍게 용서할만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작가인 주인공에는 여행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되었을수도 있지요. 하지만 본 소설 속에서 나오는 ‘기분 나쁜 일’은 자신이 여행 오기 이전에 겪었던 ‘글’과 관련한 일들입니다. 여행이라는 재도약의 발판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그것들이 이어졌던 것입니다. 급격한 추락은 겪은 작가에게는 이런 일들이 끔찍한 일로 비추어지기에 충분하겠죠.
이 끔직한 일들은 소설이 전개될수록 실체가 없어집니다. 적어도 작가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표절’ 등과 같이 구체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면, 여행지에서의 문제는 존재는 하는데 뭐가 뭔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조안 킹’이라는 존재가 그 문제의 정점이지만, 소설 속 작가는 물론 독자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결국 알 수 없습니다. 결국,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는 문제 속에서 분명한 것은 인물들이 고통에 빠진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작가 아그책님이 맥거핀이라는 개념을 훌륭하게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맥거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독자의 관심은 주제가 아니라 오히려 맥거핀 자체에 쏠릴 위험이 있는데, 이 소설 속에서는 맥거핀의 정체보다 그것에 고통받는 인물을 잘 살렸습니다.
그럼에도 ‘조안 킹’이 무엇인지 잠깐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외부의 독자와 등장인물 작가를 혼란하게 만드는 존재니까요. 힌트는 작품 도중에 언급되는 해리포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리포터의 작가 이름은 ‘J. K 롤링’이죠. 여기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해리포터는 기본적으로 현실에 없는 마법세계라는 판타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죠. 그리고 주인공이 겪는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머글세계와 이별하게 된 해리는 마법세계에서 행복하게 되었지만, 소설 속 작가는 여전히 혼란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죠.
소설은 여운을 남기며 끝나지만, 그것은 찝찝한 여운이고 혼란스러운 여운입니다. 이를 통해서 많은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혼란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혼란은 허무를 압도합니다. 외부의 독자는 소설 속 작가와 허무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그나마 저와 같은 독자는 페이지를 끝으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이 있지만, 등장인물은 그렇지 못하겠죠. 소설 속 작가는 어떻게 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그책 작가님은 그를 혼란스러운 공포에 계속 가두는 것에 성공함으로서 호러라는 장르에 그를 가두는 것에 성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 속에서 나오는 공포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극단적인 비상과 추락’을 모두 경험한 작가 개인의 공포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럴 듯하지만 결국 여러 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작가들의 작고 큰 고통들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비록 몇 편에 불과하지만 저도 소설을 조금이라도 써봤고, 지금도 계획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 짧은 소설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겠죠. 작가라면 누구나 조안 킹 선서를 강요받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