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뱀은 인간이 상대하기 힘든 자연이자 운명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공희 (작가: 아밀, 작품정보)
리뷰어: 이사금, 20년 8월, 조회 122

우리나라 설화 속에서 괴물 혹은 사람을 괴롭히는 신들을 달래기 위해 사람 그것도 젊은 처녀를 갖다바치는 풍습은 곳곳에 전해집니다. 지네가 사람을 해치기 때문에 매해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처녀가 구해준 거대한 두꺼비가 지네를 없애고 은혜를 갚은 지네장터 설화, 제주도에 전해지는 김녕사굴 설화가 대표적인 케이스에요.

굳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처녀, 젊은 소녀를 신 혹은 신과 동급이긴 하나 신성은 떨어지는 광포한 괴물에게 바치는 풍습과 이를 물리치는 용사의 전설은 세계 각국에 퍼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삶이 지역은 달라도 많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부분이에요.

예전에 신화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이런 신 혹은 신에 준하는 괴물들에게 젊은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내용이 등장하는 이유에는 사람들이 처음엔 자연을 신비로운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다가 후대에 지식이 쌓이면서 본래 자연에 있는 존재(동물 내지 질병이나 재해)와 마찰을 일으키고, 신으로 떠받들던 것들을 사람을 해하는 괴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을 제물을 요구하는 것으로 그려냈다는 해석과 고대인들은 자연을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젊은 무녀, 어린 처녀가 희생되는 대상이 되면 사람들이 동정심을 가지듯 신에 준하는 존재들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노여움을 풀고 인간에게 관대해질 거라는 해석을 본 적도 있습니다.

물론 자연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두번째 해석은 많이 답보된 세상에 갇힌 사람들의 생각이며, 오히려 자연을 오래 상대하여 지식이 쌓였기 때문에 신으로 숭배했던 자연의 존재들을 괴물처럼 여겨 그들을 달래기 위해 제물을 바치게 되었다는 첫번째 해석이 두번째 해석보다 차라리 더 나아간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해석에 따른다면 소설 속 섬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바다뱀은 단순 뱀의 형태를 띈 괴물이 아니라 섬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맞서야 하는 거친 바다 혹은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바다뱀은 인간에게 동정심을 품는 존재가 아니니 적어도 섬사람들은 두번째 해석에 등장하는 고대인들보다는 좀 나은 세계관을 가진 인간들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처녀 하나를 희생하고 먹이로 주면 자연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여전히 자연은 인간과 같다고 여겨 야만적이라도 거래는 통할 것이라 믿는 답답한 사고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실제로 자연은 인간같이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니 하나를 준다고 하나를 봐 주는 거래가 성립될 리가 없으니까요.

보통 이런 이야기에선 처녀를 구해내는 용감한 청년 보통 왕족이나 귀족, 영웅으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좀 더 깊이 해석하면 사람들의 답보된 신앙과 악습을 깨뜨리는 역사 속의 선구자들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라 생각돼요. 소설 속에서 무사는 바다뱀을 없애고 처녀를 구해내며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듯 하지만 이들의 행복도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신의 농간이나 바다뱀의 보복 같은 것이라 해석하기는 어렵고 원래 사람의 운명이란 것이 행복하다가도 순식간의 사고로 불행해지기 쉽고 한치 앞날도 알 수 없기 마련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불행에 빠지게 되는 계기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실수에 비하면 참담함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많아 절망에 빠지게 되는 일도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안한 것이 본래 사람의 삶이기 때문에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신 혹은 신에 준하는 존재들의 농간이나 뜻이라 여기기 마련이고 헛된 것이 뻔할지라도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무사는 바다뱀을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결국 일시적이었고 사람들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한 자기 운명 때문에 신을 찾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끝내는 무사가 바다뱀을 이긴 것이 아니라 바다뱀이 무사를 이긴 것이었고, 무사가 바다뱀이 되는 소설의 결말은 결국 자연 혹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무사라는 나약한 인간 하나가 삼켜져버리는 것이라고 해석되었습니다. 바다뱀은 단순 사람을 해코지하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통제하기 힘든 자연, 어쩌면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요. 기어이 무사가 없앤 인신공양 풍습이 무사가 죽은 뒤에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은 자연에 맞서기에는 너무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그린 슬픈 우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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