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빙수 작가의 <유폐>는 어느 날 사랑하는 동생을 다른 차원으로 떠나 보낸 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루고 있다. <유폐>는 원고지 38매에 불과한 짧은 이야기지만 어린 시절의 철없는 장난에서 시작된 일이 동생을 지하의 암흑세계에 ‘유폐’당하게 만든 스토리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작가의 디테일한 자료 조사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큰 듯하다.
“이건 수신기 (搜神記)라고 하는 옛날 육조시대의 책인데, 여기 보면 수광후 (壽光侯)라는 이름이 있지? 이 분이 한나라 때 살았던 내 조상이야. (…) 수광후, 이분은 요괴와 귀신을 잘 다뤘다고 해. 힘 없이 당하고만 있는 게 아니라, 술법을 써서 그 못된 놈들이 힘도 쓰지 못하게 만들고 저 깊은 곳에 있는 지하에 가둬 두었단다.”
중국 진(晉)나라의 역사가 간보(干寶)가 귀신, 영혼, 기현상 등의 초자연적 소재로 지은 소설집 ‘수신기 (搜神記)’와 수신기에서 귀신을 포박했다고 알려진 ‘수광후’에서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형성하고, 동시에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을 까는 작가의 설정이 인상 깊었다.
의도와는 무관하게 어처구니 없는 형태로 동생을 다른 차원에 ‘유폐’시키고 남은 여생을 죄책감 속에서 괴로워할 <유폐>의 ‘언니’를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위치해 있는 공간은 3차원 이상으로 구현되어 있지만 우리가 미처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차원이란 것은 공간내의 특정 위치를 정하기 위해 필요한 수치의 개수라고 정의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선 위의 점’은 하나의 좌표 x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1차원이고, ‘평면상의 점’은 그 위에 원점을 잡고 직교하는 2개의 좌표축을 정하면 1쌍의 좌표(x, y)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2차원’이다. ‘현실 속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입체 공간’은 기준이 되는 점으로부터 가로, 세로, 높이 세 가지 수치 (x, y, z)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3차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럼 4차원이란 무엇일까? 1차원의 선은 점이 이동한 것이고, 2차원의 면은 선이 이동한 자취이며, 3차원은 면이 이동한 흔적이라고 한다면 4차원은 3차원 공간이 움직인 흔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4차원에는 ‘시간’이라는 축이 더 추가된다. 3차원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우리는 ‘시간’이라는 네 번째 축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4차원 이상을 생각할 수 없다.
3차원에 살고 있는 우리는 2차원 세계의 타원이나 곡선으로 둘러싸인 불규칙한 도형 등을 보면서 휘어진 곡면은 3차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3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하위 차원을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문제제기이다. 예를 들어 1차원에만 머무는 존재는 자신이 있는 곳이 곡선인지 직선인지 알 수 없다. 오직 선을 따라 나아갈 수 있으며 앞이나 뒤를 보아도 점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차원 세계에 3차원의 공이 들어오면 단순히 2차원의 원으로 보인다. 또 3차원의 입체물체가 2차원 평면에서는 단순하게 삼각형, 사각형 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3차원에 4차원의 물체가 들어오면 3차원으로 보인다. 그래서 4차원 물체를 우리는 3차원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
“나는 유난히 우울한 날이나 절망감으로 기분이 극도로 침잠해질 때면 꿈이나 백일몽을 통해 더없이 이상한 광경을 보곤 한다. 사라지기 직전의 할머니가 이 현상을 예언하며, ‘사람의 기분이 가라앉으면 낮은 차원의 존재들과 감응하기 쉬워진다.’고 말했으니, 어쩌면 정말로 그러한 현상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확실한 것은 모를 일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동생을 다른 차원으로 떠나보면 ‘언니’의 고백을 보면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유로 인해 ‘동생’을 떠나보냈듯이 기존의 ‘인계’에서와 같은 만남의 형태는 불가능하겠지만, 역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로 다시 언니와 동생이 만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길 기원해본다. 어쩌면 그것이 <유폐> 그 후의 이야기로 빚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