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정보가 공개된 세상. 하지만 동시에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차단할 수 있는 미래.
노말시티 작가의 〈접근 한계선〉은 매우 흥미로운 세계를 가정한다. 타인의 정보에 접근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배경에서 소설은 진행된다. 사회 구성원 개인의 정보가 모두 공개되는 사회에 대한 가정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이후에도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 다양하게 제시되어 왔다. 개인정보의 공개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비추어졌으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일반적 관점으로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단편 〈접근 한계선〉은 그런 고정적인 생각을 한 번 뒤집는 배경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더 이상 개인 정보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개인 정보’란 남에게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 왔다. 노출되면 위험한 것들, 때로 창피한 것들이 개인 정보의 곳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보’는 비밀리에 관리되어야 하며 설령 국가급 정보 기관이라 하더라도 남의 정보를 사사로이 들춰 보거나 거래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로 여겨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개인정보가 없는 사회를 소설 안에서 가정하다니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아니,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물론 아무런 장치 없이 개인 정보가 사회에 그대로 퍼진다면 이 세계는 극단적으로 위험한 공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작가는 완충장치를 소설 내에 삽입한다.
잠시 SNS의 세계로 시선을 옮겨 보자. 종종 우리는 사회적 소통망 서비스를 이용하며 ‘차단’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접한다. 그 간편하고 탁월한 ‘접근 금지 명령’은 이용자에게 ‘현실 세계’의 차단 기능을 꿈꾸게 한다. 저 사람을 실제 세상에서도 차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기 싫은 것은 피하는 것이 모두의 본능이다. 이 상상은 〈접근 한계선〉에서 개인정보의 완전한 공개에 있어 완충재로 쓰인다. 누군가가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 가는지까지 알 수 있도록 신상이 공개된 대신, 우리는 실제로 누군가에게 ‘차단’을 걸어버릴 수 있다.
소설 속에서 가정된 차단 경고는 꽤 체계적이다. 경보는 세 단계로 나뉘고 지나치게 위험한 수준의 접근 금지가 이루어진다면 흑색 경보가 울려 접근한 사람에게 마취 가스가 발사된다. 더불어 그에게는 평생 누군가에게 ‘높은 강도’의 수준으로 접근했다는 기록이 남는다. 소설의 초반, 개인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되는 사회에 약간의 의문을 가졌던 독자들에게 ‘현실 세계의 차단 기능’은 반가운 소식이다. 맞아. 나도 누군가를 차단하고 싶었어, 라는 종류의 생각과 함께 독자들은 상상만으로 누군가를 차단한다는 데에 쾌감을 느낀다.
노말시티 작가는 허무맹랑한 것처럼 보였던 가정에 점점 사실성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점점 더 자신을 〈접근 한계선〉의 세계에 이입시키게 되고 비로소 그 안의 인물을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한다.
〈접근 한계선〉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두 명이다. 한 여성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남성(동민)과 그 남성을 차단한 여성(세영). 이렇게만 보면 남자 측의 인성에 상당한 의심이 가지만 그에게는 나름 억울한 사연이 있다. 어느 날 이사 온 이웃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차단을 받게 된다면 충분히 이상하고 억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세영은 그녀가 이사한 동네의 30대 남성에게 전부 ‘접근 차단’ 설정을 한다.
“누군가를 접근 금지 대상으로 설정하는 데 특별한 이유는 필요 없다.”라고는 하지만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차단이 된다는 것은 조금 씁쓸한 일이다. 동민은 세영이 자신을 차단한 것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고 혼자 고민하던 중, 직장 동료 희철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듣는다.
“경계선을 긋는 다른 하나의 의미는 경계선 전까지는 와도 된다는 뜻이야.”
이 문장은 새롭다. 차단당하는 이의 입장이 다분히 반영되어 있기는 하지만, 일단 경계선을 그어 놓으면 그 전까지는 와도 된다고 주장하는 희철의 화려한 언변은 주인공 동민과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이지 차단하는 이의 생각은 조금도 반영하지 않은 말장난이다. 그러나 차단선을 넘지만 않으면 그 안에서 무엇을 하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이 차단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건 무서운 말이다. 남이 무엇을 하는지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는 아직 이 뛰어난 3단계의 ‘타인 차단 기술’이 도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상의 차단선을 긋고 살아간다. 그 선만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대부분 남에게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문제는 남이 그 선을 넘어올 때에 발생한다. 그러나, 정말 경계선만 넘지 않으면 괜찮은 일인가? 경계선 너머에 있는 ‘무언가’에 대한 불안감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에서 발생한다. SNS의 차단 기능을 통해 발생하는 문제는 위의 ‘불안감’에 기반을 한다. 희철의 말은 소설 속 사회의 ‘차단 기능’에 대한 깊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작가는 이 차단 기능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결말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동민은 용기를 내어 세영에게 자신을 차단한 이유를 알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세영은 동민의 질문에 띄엄띄엄 답을 한다. 세영이 동민을 차단한 이유는 동민이 ‘궁금해서’였다. 차단은 ‘평행우주’와 같지만 서로가 원하는 때에 연결될 수 있는 신비한 통로라고, 소설의 서술자는 말한다.
“원하지 않을 때는 완벽하게 분리되는 세계. 원할 때만 만나는 세계.”
그것이 ‘차단’으로 나뉜 두 세계를 가장 명징하게 정의하는 말이다. 차단은 영원한 평행이 아니다. 원한다면 비밀스럽게, 일방적으로 상대를 확인할 수 있는 것. 그게 노말시티 작가가 말하는 ‘차단’의 진정한 의미이다. 이 역설적인 문장에는 ‘반전’의 매력이 있다. 소설 〈접근 한계선〉의 가장 큰 신선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접근 한계선’은 분명하고 가느다란 소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단은 ‘일방적 통로’다. 차단에는 ‘쌍방’ 소통이 부재한다. 그렇기에 동민과 세영은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조금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다. 바로 ”접근금지’를 풀지 않고 서로를 마주하는 것이다. ‘일방적 통로’가 아닌 진정한 합일을 위해 둘은 서로를 마주한 후, 마취가스가 나오는 흑색경보를 견딘다. 흑색경보가 울린 기록은 평생 남는다는 것을 이용한 재미있는 전개다. 각자의 인생에 상대를 각인하는 방식으로 둘의 만남은 이루어진다. 〈접근 한계선〉에서 새로운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토록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상대가 궁금해서 그를 차단한 여성, 그리고 차단에 대해 의문을 품는 남성. 일방적인 ‘차단’이 아닌 쌍방의 경고와 각인을 통해 맺어지는 이 소설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무한한 변화 가능성을 말한다. ‘닫힌’ 개념이었던 ‘차단’은 이 소설을 통해 독특한 소통의 모양이 된다. ‘차단-일방적 소통-차단의 무시-각인’ 과정을 통해 비로소 단단해지는 관계의 맺음은 〈접근 한계선〉이라는 제목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인물을 이끌어간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소설 속 세계가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독특한 세계를 그리기에 두 명의 인물은 조금 아쉽다. 이는 긍정적인 아쉬움이며 가능성이 된다. 차단을 말하는 방식이 밀도 있는 반전을 통해 이어짐에 따라 독자들은 더 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세영과 동민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차단’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을까. 중편이나 장편으로 이어진다면 또 어떤 ‘차단’의 모양이 등장할까. 한 명의 독자로서 궁금증이 생긴다. 세계를 나누는 다양한 차단의 모양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이들의 관계가 궁금하다. 작가가 만든 공간의 넓이만큼 퍼져 나갈 촘촘한 연결고리의 모양이 궁금하다.
극단적인 시스템 안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은 없을까. 이 시스템에 수긍하고 그저 따르는 수동적인 인물은 없을까. 양끝, 그리고 중간의 무수한 스펙트럼이 머리에서 둥실거린다. 이는 노말시티 작가의 소설에서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가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
읽는 내내 느낀 감정의 변화폭이 꽤 큰 작품이었다. 짧았음에도, 두 명의 인물이 이끌었음에도 사회 시스템의 변화는 많은 구성원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에 언뜻 장편처럼 보이는 단편이다. 완독한 후에 〈접근 한계선〉이라는 제목을 보며 뻗어나가는 생각을 정리한다면 소설을 읽는 맛이 더 진해질 것이다. 가만히,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차단의 방식으로 이어질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