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생산자에 충성을 가지고 꾸준히 소비를 하다 보면 일관된 기대를 품게 되기도 하고 가끔은 생각도 못 한 선물을 받을 때도 있다.
엄길윤 작가의 작품들의 일관된 주제는’ 파멸’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의 방향성을 따지자면 ‘하강’이 될 것이고 묘사의 집요함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글을 접할 때 나는 그러한 요소들을 기대한다.
자동차 역시 그러한 면모들이 돋보인다.
초반의 섬뜩하지만 조금은 해석 가능한 상황들이 점점 환상성을 띄며 세계의 종말과 개인의 파멸로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 글인데, 모든 좋은 공포 소설,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글 역시 꿈, 특히나 악몽의 비논리적 논리에 따라 흘러간다. (꿈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이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 부터 시작하다니 묘하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의 묘사 방식이 특히나 좋다.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모두 몰려나와 있는 차와 그 안에 빼곡히 갇혀 있는 사람들같이 그래도 이해가 가능한 범주의 이미지들부터 후반부의 환상적 색채로 파멸해 가는 세계를 묘사하는 집요함이 특히나 발군이다.
보통 두려운 장면을 묘사하는 작가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의 ‘난 망했다. 무서워. 저게 뭐야. 으아아~’식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무섭다! 놀랍다! 호들갑을 떠는 게 기본 방식일 텐데 자동차에서의 접근 방식은 그러한 감정선은 유지하면서도 다분히 보고서 작성의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게 재미나다.
요그 소토스가 지상에 강림한 와중에도 ‘눈의 지름은 몇 미터이고, 피부의 질감은 어떻고….’를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상 언급한 것들이 내 충성심과 기대에 대한 충족치라면 글의 진짜 백미는 결론 부에 있다.
이야기는 끝없이 하강하고, 주인공은 파멸의 문턱에 발을 내디뎠고, 세계는 종말을 맞이한 와중에 급작스레 방향성을 전환하여 이야기는 상승하고, 주인공은 구원받는다.
뻔하다면 뻔한 신파극일 수도 있을 테지만 그 신파의 결론까지 내달리던 과정의 치열함과 예상치도 못했던 구원이 찾아오는 방향성이 이 급작스러운 반전의 극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반전 요소는 살짝 에이드리언 라인의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케도 한다.)
난 특히 중반의 번호판을 통해 제시된 참으로 섬뜩한 문구가 막판에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인 문구로 뒤집히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지만 작중에서 촘촘히 제시된 두려움의 기재들이 막판에 거울상으로 뒤집혀 작동하는 방식이 작품의 테마에서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결론적으로 내 기대는 즐겁게 배신당했고 그 과정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의 감동이라는 선물도 받았다.
이 정도의 소득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생산자의 충성스러운 소비자로 머물러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