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지하철 칸에서 다른 칸으로 넘어가다가 공포의 세계에 휘말린 성식이 효정, 최 형사, 선국을 만나며 생존하는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의 플롯은 복잡할 것이 없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찾아온 공포의 세계가 무대이다. 그곳에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후 잡아먹는 식인 괴물들이 존재한다. 이 배경만으로도 무서운데, 그곳에 형사와 토막살인범이 더해진다. 인물들만 봐도 흥미진진하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두 가지였다. 우선 서사의 흐름이 긴박하고 몰입감이 있다는 점이었다. 공포의 세계에 발을 들인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와 식인 괴물들의 묘사로 인해 독자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다. 과연 주인공은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늘 기대하듯) 괴물들에게 희생 당할 다음 인물은 누가 될까. 궁금해서 스크롤을 빨리 내려야만 했다. 또한 단편에 어울리는 적당한 수의 등장인물들의 밸런스가 좋았다. 평범해 보이지만 극한의 상황에 적응해가는 성식과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버티는 효정, 입이 거칠기는 하나 용감한 최 형사, 토막살인범이고 성질이 급한 선국. 급박한 분위기 속에서도 주요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기 충분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대사이다. 그 중에서도 작가가 할 말, 즉 주제(인간은 선하고 위대하다)를 등장인물이 그대로 말해버리는 대목이 아쉬웠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이해가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각자가 들어본 이야기를 토대로 세계관을 설명하려드는 대사도 그러했다.
전자의 경우 사실 독자의 주관적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경우 주제는 독자가 찾아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등장인물이 주제를 그대로 내뱉어버리는 순간, 뭔가 맥이 풀렸다. 최 형사의 희생 대목은 슬프고도 숭고했다. 그래서 그가 죽는 순간의 한 마디만 남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후에 다른 인물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하거나 인간들에게 희망을 품는 장면이 없이 최 형사의 최후만 잘 그려냈다면, 임팩트와 여운이 함께 남았을 것 같았다.
후자의 경우는 전체 흐름에 있어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식인 괴물의 정체를 규명하려드는 등장인물들에게 이입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그들이 있는 곳이 2차적 공간이든, 평행우주이든, 도플갱어가 사는 공간이든 상관없었다. 그래서 선국이 4차원이라는 한 단어로 그들의 상황을 정의해버렸을 때, 통쾌하기까지 했다. 밖에 식인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마당에 생존보다 더 중요한 건 없을 것이다.
빠르게 읽힌 만큼 리뷰도 짧을 것이라 여겼는데 쓰다가 보니 길어진 감이 있다. 최근에 읽은 브릿지 중단편 중에 재미로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읽는 도중에는 손에서 놓을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이 작품 속에서처럼 인간들은 어떤 상황을 만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선하고, 선하기에 위대하다. 공포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들은 희망을 꿈꾸는 존재들이다. 작품은 열린 결말로 끝났지만, 그들은 끝내 살아남을 게 분명하다. 지옥철에서 살아 나간 후에도 살아 나갈 것이다. 인간이므로.